신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곳이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실용적이라기에도 참으로 간소했다. 방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 생활감마저도 적었다. 길게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얼굴 위에서 내려 하나로 모으며 피네는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러다 몸에 무언가 닿자 놀라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제는 이 사람과 하루를 보내고 영원을 약속했다. 얇은 이불 아래로 허리에 감긴 팔을 들어내기엔 아직 잠에 취한 채 그녀는 침대의 등받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었다. 아래편에 아직 자는 얼굴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매번 보았지만, 이렇게 곁에서 잠들었던 적은 없던 얼굴이 아직 일어날 때가 아니라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피네에게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뺨을 간지럽혔다. 간신히 들릴까 말까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살짝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 그녀는 그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빠져나와 긴 머리카락부터 목 아래로 살짝 모았다. 평소처럼 가지런하고 편하게 묶으려면 제법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임시방편이었다.
쓴 흔적이 없는 서랍장 위의 거울을 보러 걸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아프지 않았다. 피네는 어제 무리해서 걸은 것치고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업어주었던 덕분이리라. 사람 하나를 내내 업고도 지친 줄도 모르는 것 같던 그는 일어날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부부가 되었다고 이곳에 있을 때는 같이 생활하기 위해 급하게 빌린 방이었다. 앞으로 조금씩, 시간이 날 때마다 약간이라도 꾸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카즈윈이라면 아무래도 좋다고 하겠지만.'
네가 있으면 된다고 했던 사람이니까, 분명 피네만 이 방안에 같이 돌아와준다면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피네는 만약 지금 몸이 안 좋았더라도 좋아질 것만 같다고 느꼈다.
조약한 빗을 집어들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빗어내리며 피네는 끝나버린 휴가를 아쉬워했다. 어제 한 약속만큼이나 무거운 사명이 사라자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래도 네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젠 괜찮은 것처럼 느껴져.
감정이란 어찌나 소중한지. 오직 두 사람 서로의 약속만이 증거가 되는 말이 이제는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오늘 바깥으로 나가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가서, 이 방에 동시에 돌아올 수 있을 떄까지 다른 곳에 있겠지.
'그렇더라도 제 마음과 굳건함에 동요가 없음을.'
신께서 그들을 굽어 살피시듯이 그가 언제 어디서든 그녀를 잊지 않고 함께 하리라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더라도. 피네는 그렇게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깜짝이야……."
거울에 까만 머리카락이 비쳤다. 목을 감싼 팔 아래로 어깨에 얼굴을 묻은 그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림자보다도 조용하게 다가왔지만 딱히 놀래킬 의도는 없었던 것 같았다.
"카즈윈, 무거워."
"……."
"그리고 간지러워."
부부가 된다는 약속을 실현했지만 그래도 숨결이 잠옷 위로 목이며 어깨에 바로 닿는 것은 영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피네는 어쩌면 카즈윈이 그녀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 조금 전까지 자는 척을 했던 건 아닐지 생각해봤지만 그건 역시 좀 지나쳤다. 아마 피네가 입을 맞췄을 때쯤 순식간에 눈을 뜬 다음에, 지금 뒤로 다가와서 하고 싶은 대로 했다는 쪽이 맞을 터였다.
"졸려?"
"……."
"더 자도 되는데, 아직 시간 있어."
"더 자는 것도…… 좋겠지."
"그래도 돼."
"……."
"……카즈윈?"
카즈윈은 아무래도 피네가 얌전히 머리카락을 빗어서 정돈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묻은 채 있던 그가 얼굴을 들어 피네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곁에서, 더."
함께 걷겠다고 했었지, 생각해보면 그건 멈춰있을 때도 같이 있어주겠다는 거구나.
부부가 되어 영원을 약속한다는 뜻을 그제야 깨달은 것처럼 피네는 카즈윈의 팔을 풀까 하던 손을 멈추고 생각했다.
'그럼 조금 더 잘까.'
하고, 피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조금 미루는 거다. 여길 나가면 또 무슨 일이 닥쳐올지 모르니까. 아직 걷지도 않은 커튼 너머로 빛이 미약하게만 새어들어오는 지금이라면 피네도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다. 빗다가 만 머리카락이 카즈윈의 얼굴을 감쌌다. 얼굴을 돌린 피네가 눈을 감고 고개를 기울인 채 속삭였다.
"그럼 나도 더 잘래."
"……?"
"데려다주면."
다른 곳에 있어도 함께 하리라고, 결혼 후의 첫 기도 내용이 괜찮단 생각을 했던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피네는 어리광을 부렸다. 걷지 못할 상태도 아니었고 이런 건 원래 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제 와서 부끄러울 게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청혼했던 때처럼 부끄러움 같은 건 없을 카즈윈이 팔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허리를 감싼 뒤 그대로 안아올렸다. 조금 전 누워있던 곳으로 돌아간 피네는 어서 자라는 듯이 그의 목을 끌어당겨 가슴께에 두었다. 침대가 조금 삐걱거리며 입술이 파고든 것은 빨랐지만 피네가 일어나서 이마에 했던 입맞춤처럼 애틋하고 느긋한 면이 있었다.
오늘은 지각해도 용서해주세요, 우리를 살게하는 신이시여.
이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괜찮고 어떤 힘든 일도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달콤하게 빠져들면서 피네는 나른하게 잠과 사랑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