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PG 인세인 시나리오 【Room -0-】 AU 설정, 플레이 로그 기반 연성.
카즈윈과 피네는 근미래 배경의 전자 공학 연구원입니다.
※ 카즈윈(PC1) 플레이어 마바님, 피네(PC2) 플레이어 레이스칼.
※ 이 글에는 TRPG 룰 <인세인>의 시나리오 【Room -0-】와 【Room -0- 어나더 Cube】의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대량 포함되어 있으니 열람하실 때에는 주의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의 나를 내려다 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이미 죽은 자를 대신 살게 하는 데에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원했다.
"내가 살아있으면 대신으로 살기 위한이란 말이 전혀 성립하지 않잖아."
카즈윈은 놀랍도록 예리하다. 그런 사람이니까, 언젠가는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단 둘이서 보내는 하루의 날이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아까 그 말 뒤집어봐."
뇌에는 나의 기억과 행동이 착실히 트레이스되고 있는 와중, 피험자 본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데이터 때문에 소장님이 제안을 하셨다. 소중한 사람과 딱 하루, 내 기억이 트레이스되고 있는 뇌와 함께 보내달라고. 그러면 실험은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고, 카즈윈의 꿈도 조금 더…… 나는 승낙했고, 예쁘게 꾸며진 가정집 같은 방에서 카즈윈과 1박 2일의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어째서 방에 놓여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연구 파일들 중 하나의 내용에 대해 카즈윈이 의문을 제기했을 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카즈윈은 이미 보았다. 나와 똑같은 '그것'을.
'그것'은 우리가 하루를 보내게 된 방의 한쪽에 숨어있었다. 겉보기로는 나와 구분이 가지 않는 인간 같기만 했다.
볼 수도 있고 보지 않을 수도 있는 곳에 그것은 있었고, 보았고, 그런 연구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카즈윈도 알아야 했으니까.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뇌가 없는 시신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얼굴이나 몸만은, 나와 꼭 닮아서.
"뒤집으면……."
이미 잘 알고 있어,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죽으면 나와 똑같은 것이 대신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알아, 내가 그렇게 생각한대도 너는 아마 인정하지 않을 거야.
"생각해봤자 우울하고 답 안 나오잖아."
"……난."
카즈윈은.
"……생각할 수밖에 없어, 네 일이니까."
그렇게.
"네 문제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그렇다면 나도 묻고 싶다. 카즈윈, 나는 아직 말하지 않았어. 내 목숨이 이번 해를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걸. 이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벌써 어렴풋이 알아버렸을까? 나는 카즈윈에게 몸을 기대며 몸이 닿는다고 생각이 전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있잖아…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그건, 너를 향한 말이 아니라 나를 향한 말일까.
"그러니까, 오히려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게."
나는 카즈윈이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카즈윈이 슬퍼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것은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을 죽이기 위한 기계다. 방을 열심히 조사하고 있는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한다. 나갈 수 없다, 결코.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기에 피네였고 피네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기억이 있었다.
그와 찍은 사진이 가지런히 하얀 파일의 정리되어 어딘가에 꽂혀 있는 기억.
검은 노트북으로 글자를 쳐서 그에게 무언가 남기고 싶어 했던 기억.
마지막으로 끌어안아달라 하고 싶었지만 그 부분은 원본에게서도 기억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말했을까, 그가 안아주었을까.
그날은 그녀가 그녀를 죽였다. 기억을 트레이스하던 안드로이드는 너무도 원본과 동일하여 착각하고 말았다. 너무도 원본과 닮아 있어서 자기 자신을 원래의 존재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플갱어를 제거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해냈다.
검은 노트북 위헤 붉은 피가 뿌려졌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이 안드로이드의 기억에 없다. 그것은 이미 폐기처분 되었고 여기에 있는 그것은 예전의 그것과는 다른 개체였다. 둘 다 '피네'일 뿐이었다.
피네, 피네, 그를 사랑하는 피네니까.
그런데도 그를 죽여야하네, 그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네.
그는 안드로이드가 원본이 되는 사람을 죽였다는 미증유의 사태를 덮기 위해 사랑에 얽힌 살인 사건에 회부되고 말았으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구원과 속죄가, 피네와 같은 그것의 손에 죽는 일이자 사형용 안드로이드의 실험.
그래, 나는 그녀와 같아.
그녀와 같으니까 그를 사랑해.
그를 사랑하면 여기서 죽게 해야 해.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명령이 입력된 사형용 안드로이드와 죄를 뒤집어쓰고 영원히 쫓길 죄수를 받아줄 자리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사랑하니까 죽여야 해.
그것은 사랑하니까.
나는 사랑하니까.
방에 장치된 시계가 곧 사형 시각을 알린다. 진실을 깨달은 안드로이드는 이 하얀 방에서 하얀 복도로 가는 문을 연다. 그는 나갈 수 있다. 아니, 나가주었으면 했다. 그게 그것에게까지 남아있는 죽은 이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가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해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고 믿었다. 그녀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말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고 믿었다. 그러니, 동일한 진실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죗값을 치러야지, 속죄의 시간이다.
그것은 그것이기에 죽어도 상관 없었다. 자신은 피네이지만 피네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그이다.
"가."
그는 기만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진실은 이미 양쪽 모두 알고 있다.
나는 너에게 피네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이 사랑만은 진실이야.
"기만 같은 건 버리고."
그저 가, 모든 기만을 여기에 버리고.
그러기를 원했지만.
"하하……."
그가 낮게 웃었다.
"너와 함께?"
"나를 버리고 가도 된다고 했잖아."
나를 버려. 내가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면.
그는 잠시 침묵했다.
"……."
그는 말한다.
"너와 함께. 가야지."
그 안드로이드는 그 말에서 사랑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네게로."
그 얼마나 비참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말인지.
날아드는 톱을 피하며 그것은 눈물이 흐르는 기능이 자신에게 탑재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기능이 있더라도 작동할 일은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카즈윈. ……사랑을 믿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이제 됐어. 상관 없어, 이제."
그는 대답했다.
"피네. 아니……. ……그래도 너는 피네지."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피네야."
"사랑해."
그의 사랑은 그 어떤 외침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랑했어."
그 스스로의 목을 자르려 드는데.
"정말…… 기쁘네……."
그렇게 말하며 그것은 톱을 빼앗았다. 더이상 막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의 속죄는 그녀의 흔적마저 지우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살길 바란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 둘 모두가 이루어질 일은 결코 없다, 그렇다면.
"두려울수록 사랑은 진심이야. 무서우니까 제발 그만 둬."
"…너는 나를 진작에 무서워했어야 해."
아니, 무서울 리가 없어. 네 잘못이 아니니까.
"왜? 그럴 리가."
"…그랬어야 해."
"나는 카즈윈이 죽는 것 말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으니까."
"……."
입을 다물고 혀를 깨무는 그에게 입을 맞춘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제와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겠지, 그녀는 마침내 마음 속으로 웃었다.
드디어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할까? 그러면 카즈윈은 만족할까? 가장 이기적인 선택이 뭐라고 생각해 카즈윈?"
"……."
"나는 원래도, 나만 생각하게 되어있나봐."
"……."
"그럼, 답은 뭘까?"
"……."
"이렇게 간단한데…… 진작 이럴 걸 그랬나……?"
"……."
"더이상 카즈윈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게.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어."
이제는 모르겠어,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피네?
아니야, 내가 피네지.
이제 내 소망은 이 하얀 방만큼이나 깨끗하고 투명해.
그녀는 입술을 그에게 맞추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 두려워라……."
희곡의 대사를 읊는 것처럼.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되어서."
종막을 앞둔 자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사형 안드로이드에 대한 이번 실험은 성공적이지 못하군요. 아무래도 원본의 기억을 너무 많이 이어받은 탓인 것 같습니다. 최종 결과가 이모양이라니 재검토를 해보는 게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안드로이드의 상용화에는 아직 길이 멀지만 다음에는 더 나은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스폰서의 앞에 보고서를 내려놓은 소장은 남몰래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었다.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드로이드 P, 스스로에게 주어진 사명을 견디지 못하고 실험실의 창문을 파괴하여 누수를 일으킴. 누수에 따른 누전으로 인하여 안드로이드는 활동 정지, 피험체 사형수 C 또한 사망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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