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기도한다
이 세상의 만물을 굽어 살피시는 아튼 시미니님, 저는 제 기도가 한없이 이기적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따지자면 세상의 모든 기도가 그럴 것이라는 불경한 생각도 몇 번이나 해본 적이 있답니다. 기도는 오직 아튼 시미니님과 저만이 듣는 것이니, 누구의 귀에도 들려줄 수 없는 말을 그 날부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없이 많았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도들을 저버리지 않고 들어주시며, 저를 이 세상에 있도록 허락해주시고, 흔들림을 넘어 여기까지 오게 해주셨음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올리고자 하는 것은 아튼 시미니님에 대한 제 신앙이자 그 신앙에 작은 배반이고, 또한 간청입니다.
제가 가장 처음으로 기도드렸던 날을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넓은 세상에 홀로 남겨졌던 저에게 의지할 것은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외침뿐이었고, 그 외침을 외면하시지 않으셨기에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줄곧 기도에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한없이 이기적이고 혼탁한 기운이 어린 양을 받아주신 분께서, 불행하고 나빴던 것들을 모두 언젠가는 신께서 씻어주시리라. 세계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고행에 발을 담는 것만이 제 죄와 피를 지울 수 있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것이 절대자에 대한 제 신앙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저는 그것들이 완전히 지워졌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까지도 전부 제가 감내해야할 업보이며, 맨발로 밟아야할 가시밭길이라 알고 있습니다. 어린 날에는 그것보다 더한 길도 걸어왔으니,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제게는 아튼 시미니님이 허락해주신 삶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지은 죄를 벗어나지 못했던 저는 신앙을 시험 받고 꺾여 부러진 채 바닥에 누워야만 했습니다. 스스로를 바치기로 했던 제 신앙을 잊은 채 목숨을 스스로 집어던지려 했던 것은 분명 저를 살아가게 하셨던 신께 모독적인 행위였을 겁니다. 신앙으로 새 삶을 긍정하는 수도의 길을 걸었는데도, 결국 저는 목숨을 끊는다는 불경한 행위를 시도하고, 그마저도 이루지 못한 채 아튼 시미니께서 받아주신 몸을 현혹하는 자들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튼 시미니의 기사로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평생 몸에 새겨야할 죄가 또 하나 늘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참회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죄를 고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다만 제가 작은 배반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믿음에 대한 죄는 가령 어떠한 시련 앞에서 제가 어찌할 도리 없이 쌓아올려진대도, 믿음에 대한 배반은 스스로 저지른 것밖에 존재할 수 없는 따름입니다.
제가 고해하고자 하는 작은 배반은 바로 그 날 있었던 일과 제 마음에 대한 것입니다. 믿을 수 없게도 저는, 제 신앙을 모독하고 유린하는 존재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죄를 범하였어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실로 아튼 시미니께서 보내주신 기적이라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튼 시미니의 기사로 돌아온 저는, 씻어야할 죄를 생각함과 동시에 본디 지니고 있던 신앙에 대한 배반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만 것입니다.
그 어린 날, 저를 이끌어주시고 수많은 고초를 넘어 여기까지 이 세상을 겪게 하셨음이, 제가 아튼 시미니의 기사로서 살아가기 위함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경한 마음을.
죄를 씻고 이 세상에 이바지하는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저를 기사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저는 아튼 시미니의 기사가 된 것은 오직 그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배반은 고해하고 진심으로 뉘우침으로서 사해지기 시작합니다. 송구스럽게도 저는 이 자리에서 고해하고 있지만 뉘우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 배반을 고해하고 스스로를 다시 채찍질하려는 방식이 그릇되지 않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제 이 고해를 그릇된 행위에 대한 뉘우침이 아니라, 아튼 시미니님께 바칠 제 새로운 저로 바꾸어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 작은 배반 자체가 그릇되었다고 하면 아튼 시미니의 기사로서의 제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제 삶에, 그리고 제 곁에 있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튼 시미니의 기사가 될 수 없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고해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정련하고 똑바로 서게 될 때에, 절대자의 의지를 수행하는 기사로서 이 세계의 순리에 따라 제 신앙이 온전할 것임을 믿습니다.
저에게 그러한 아튼 시미니님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던 날, 제가 보고 있던 것은 그의 입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 절망 속에서 제게 마지막으로 남았던 것은 죄를 씻기 위해 그토록 갈구했던 기사의 길이 아니라 그의 다급한 얼굴이었습니다. 기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지만, 아튼 시미니께서도 당신의 기사인 그가 어떤 이인지 분명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제 삶 모두를 통틀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기도를 모릅니다. 하지만 신 앞에 서면 언제나 서투르고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는 저와는 아주 다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가 언제나 그랬듯이 아튼 시미니의 앞에서도 그 초연한 태도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고, 저는 그러한 그가 좋았습니다. 한결 같고, 흔들림 없고, 무엇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많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그가.
그의 주의가 온통 저를 향해 쏠려 있었던 그 날, 저는 그 사실을 기쁘게 여길 여지도 없이 벗어나지 못한 죄의 나락에 휩쓸려갔지요. 모든 것이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아튼 시미니를 모독하는 존재가 된 저는 아마도 울부짖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기도인지 외침인지 모를 것을 드렸던 그날처럼. 누군가 저를 구해주면 좋겠다고 어리광을 부리듯이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과거와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수치를 넘어 구원자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아, 아튼 시미니님. 그 순간의 불경한 생각을 어찌 고백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튼 시미니의 기사인 그와, 그와 함께 저를 돕기 위해 달려온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의 손길을 타락하여 신앙마저 잊은 저는 아튼 시미니님이 주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제가 듣지 못한 채 쓰러졌던 그의 외침만이 제 귓가를 울렸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었는데, 들리는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가 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목소리는 저를 놓지 않았고.
저는 그 구원을, 그가 준 것이라 굳게 믿어버린 채로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튼 시미니께 이 괴로움에서 구해달라 기도한 이래 당신의 기사가 된 저에게 이 판단은 실로 제 신앙에 배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저, 저를 구원한 그를 신께서 주셨다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었지요. 지금도 이기적인 제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것을 부디 저를 이 세상에 지금껏 허용해주셨듯이 허락해주시고.
그를 만난 것이 아튼 시미니께서도, 라이미라크께서도 간섭하지 않은 제 운명이라고 제가 믿게 해주소서.
기사의 몸으로서 신앙보다 그를 크게 여기었고 지금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을 작은 배반이라 표현하는 것은 제 이기심이 불러온 오판일지도 모릅니다. 반성하고 참회하고 고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믿음을 아튼 시미니에 대한 신앙만큼이나 바꿀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요. 아튼 시미니께서 창조하신 이 땅 위에서 제 삶의 무너짐도 희망도 모두 절대자의 발 아래 이루어졌었나이다. 제가 신앙과 또 다른 믿음을 지니게 된 것이 부디 아튼 시미니의 뜻에 어긋나지 않기를 송구스럽게 간청합니다.
부디 제가 그를 만난 것이 온전한 제 운명이라 믿도록 허락해주신다면, 저는 이 운명과 함께 아튼 시미니의 뜻에 마지막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제게 목숨을 주신 분들과, 부끄럽게 살아남았던 목숨의 빚과, 그가 가져다준 새 목숨에 부끄럽지 않도록 이 고해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올리는 이 기도는 기사이자 신앙자로서 아튼 시미니님께 모든 저를 날 것으로 드러내는 외침입니다. 제 모든 죄와 허물을 굽어 살피시고 이 세상의 순리가 올바르게 흘러가기를 간절히 기원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이 기도의 안에서도 가장 이기적인 고백을 다시 들어주세요.
제멋대로인 제 믿음과 다르게 그를 보내주신 것이 정녕 아튼 시미니시라면, 그를 제게서 앗아가지 말아주세요.
그가 없는 제 삶은 지금 올리는 이 기도처럼 이제 상상할 수 없으니.
부디, 어린 날의 저를 살리고 감싸안으셨듯이 이제는 그와 동반하는 삶을 허락해주시옵소서.
그에게 구원받은 저는 그의 곁에서, 아튼 시미니의 기사로서 이 삶을 바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가기 위한 진언이자 축복이며 맹세이자 구원임을 이 기도에 새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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