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을 해제한 성기사는 두 손을 모으고 웃어보였다. 손가락 마디 사이가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감추려고 그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을 뿐이었다.
"괜찮아. 그야,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알고 있어."
"응."
흔들리려던 연녹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저 편에는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신을 섬기는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그 결백함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혼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배교의 의혹이 있는 자를 심문하는 일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다. 고의더라도, 고의가 아니더라도.
"잘…… 될 거야, 피네."
"카즈윈이 그렇게 말해주면 정말로 그럴 것 같아. 아마, 약간 힘들지도는 모르지만."
이질적인 신성력이 섞였던 인간을 그 알반 기사단 전투조의 조장까지 올라가게 했다는 것은 사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알반 에일레르의 조장 피네에게 정말로 배신할 의도가 없었는지, 혹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용당했고 더 이용당할 가능성이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성전에 대하여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좋은 결론이 나더라도 과정은 가혹할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바쁠 텐테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홀로 가야하는 길 앞에서 두렵더라도 망설이지 않을 신념은 물론 지니고 있었다. 기사 피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허술하지도 않았다. 빈 틈을 헤집고 벌리는 고통을 빛으로 메우며 전진하다보면, 길이 있었다.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다녀오면 또 만나, 카즈윈."
"피네, 나는."
카즈윈이 이렇게 운을 뗀다면 무언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 것이리라. 피네는 조금 집중한 채 눈동자를 깜빡였다. 다시 언제 볼 지 모르기도 했으니 그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아두면서, 경청한다.
"네가 시험받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해."
"응, 어쩔 수 없으니까."
그녀의 탓은 아니어도 죄는 죄이며 행위는 행위이고 결과는 결과였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 피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카즈윈은 언제나 옳은 말을 해주었고, 이번에도 그랬다. 조금 냉정하더라도, 카즈윈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지만 너를 시험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아니야."
부릅뜬 맑은 눈이 피네를 응시했다. 의지가 넘치는 강인한 눈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무조건 굴할 필요는 없어."
"카즈윈……?"
"인간의 심판은 결국 신을 대리할 수는 없이 모방하는 것뿐이니, 네 신이 너를 그릇되지 않았다 하신다면 너는 틀리지 않아. 우리를 시험하는 건 언제나 신이지."
네 신이라니, 이상한 표현이었지만 피네는 이해할 수 있었다. 카즈윈에게는 분명, 카즈윈이 이곳까지 오게 만든 신께서 굽어살피셨을 터다. 어린 소녀를 기사의 길로 이끈 길이 있었듯이.
"카즈윈다운 말이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괴로운 과거에서 도망치고 뼈를 깎는 수련을 이겨내며 아무에게도 고민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나아가려면 어떠한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피네는 진심으로 웃어보였다.
"하지만 카즈윈도 알잖아. 내 안의 그분께서 나를 긍정하셔도 타인은 그걸 알 수 없으니, 나는 증명해야 해. 나는 아튼 시미니의 종이며 알반 기사단을 이끄는 한 축임을, 기도드리듯이 내보이는 수밖에 없어."
본의가 아니었던 점을 정상 참작받아 배교자의 오명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일 터였다. 기사단에서 강등되거나 쫓겨나지 않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피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가 어찌될지는 몰라도…… 카즈윈."
"……."
말보다는 보통 몸으로 대답하는 남자였다. 피네는 그런 그의 몸짓을 관찰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나의 신께도, 나를 구해준 네게도 부끄럽지 않다면 나는 만족할 거야."
인간의 심판인지 신의 심판인지 알 수 없는 판정이 내려질 장소 앞에서 피네는 등을 돌렸다. 카즈윈은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일이기도, 그들이 오래 몸담은 이 집단의 규정이기도 했다.
신께서 굽어 살피시리라, 말만으로는 의미가 없는 기도문이 허공에 떠돌았다.
만약 그녀가 최악의 형태로 돌아오게 된다면, 하는 불안감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즈윈은 차분하게 가장 좋지 않은 사태를 상정해보았다.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인간이 그들을 버리더라도 기사로 있는 한 신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