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멘 마하의 서쪽에는 젊은 장인이 운영하는 인형 공방이 있다. 동쪽에 있는 집합 장소에만 볼 일이 있는 알반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알터는 그쪽에 한번도 가본 일이 없었다. 아마도 매우 좋아하는 밀레시안님이 그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무언가 열중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인형 공방이 있는 줄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른다.
"밀레시안님! 여기 계셨네요."
알터를 알아본 밀레시안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해주며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알터는 잠시 그 밀레시안이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단추를 집어들어가져가는 손길을 보고 손뼉을 쳤다.
"아, 인형을 만드시는 건가요? 밀레시안님은 인형도 좋아하셨구나!"
"아르바이트."
"네?"
"공방의 일일체험 아르바이트인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요 앞에 위치한 인형 공방에게 약간 도움을 주고 보상을 받는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주로 하는 것은 판매용 인형의 마감처리로, 몸은 이미 완성되어있는 인형에 눈을 부치거나 팔다리를 보수하여 예쁘고 튼튼한 인형으로 만든다. 알터로서는 듣도보도 못한 도구로 실을 자르거나 이어붙이며 접착제를 바르고 마감재를 고정하는 밀레시안의 손놀림은 달인이라고 할 만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별 거 아닌데……."
"저, 저도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알터의 조장이 봤으면 그런 데서 눈에 띄게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돌아오라고 했겠지만, 좋아하는 밀레시안님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알터의 초록빛 눈에는 생기가 넘쳤다. 이정도는 알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간단한 작업을 지시했지만, 아무래도 알터는 역시 기사다운 기술만 수련했는지 영 손재주는 불안해보였다. 결국 밀레시안은 알터에게 건넸던 핸디크래프트 키트를 회수했다.
"죄송합니다…… 역시 저 잘 못하죠……."
공방에 납품하는 물건에 하자를 낼 순 없다고 말하진 않은 채 밀레시안은 조용히 가방에서 커다란 종이를 꺼냈다. 잡화점에서 흔히 파는,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종이었다. 멀뚱멀뚱한 알터에게 종이와 누름도구를 주며 밀레시안은 가장 쉬운 걸 시켰다.
"종이학."
"네?"
"종이학, 접을 수 있어?"
못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알터에게 결국 종이학을 처음부터 접어보게 시킨 밀레시안이 공방에 줄 인형을 모두 완성하는 동안, 알터는 종이의 잔해를 만들어낸 다음 간신히 그럴 듯해보이는 종이학을 하나 탄생시켰다. 그래도 어딘가 쭈글쭈글하고 각이 덜 잡힌 것이 영 초보자의 솜씨였다.
"변명같이 들리시겠지만 다른 수선은 꽤 잘하거든요. 근데 크기가 좀만 작아져도 어째 힘들어져서……."
"잘했어."
"정말요!"
칭찬 한 마디에 벌떡 일어난 알터가 주변을 뛰어다니며 종이학을 자랑하기 전에 밀레시안은 알터를 곁에 앉히는데에 성공했다. 공방에 완성된 인형을 넘기고 오면 함께 돌아가자는 말에 알터는 싱글벙글 웃으며 기다렸다. 약속된 보수를 받은 밀레시안이 돌아오자 알터가 접은 종이학은 온데간데없, 아니, 있었다.
"이것 보세요 밀레시안님! 제가 처음으로 접은 학!"
알터의 갑옷 사이 틈새에 자랑스럽게 붙어있는 종이학은 아무래도 밀레시안이 남겨두고 간 핸디크래프트 키트에서 꺼낸 도구로 어떻게 거기 고정된 것 같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울 것이 뻔한 알터를 보면서, 아벨린에게 혼나도 난 모른다는 말을 삼킨 밀레시안은 조용히 남은 인형을 등 뒤로 숨겼다.
'공방에서 남은 재료로 만든 인형을 지금 주었다간 정말로 무슨 일이 날지도 모르니, 나중에 주기로.'
밀레시안님께 받은 거라면 무엇이든 소중히 여길 알터가 아벨린에게 그 종이학 당장 뗴라며 혼나고 난 뒤의 언젠가를 노리며 밀레시안은 곰인형을 감춘 채 살금살금 알터의 뒤를 따라갔다.
종이학도 인형도 사도와는 영 어울리지 않지만, 알터가 좋아한다면 종이학 천 마리든 인형 백 개든 만들어주고는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