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리스트들 길드 밀레시안 첼군을 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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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뭐가?"
"첼씨가 저와 카즈윈의 다툼을 말리셨을 때 말입니다."
말려서 놀랐다는 건가, 그냥 그 상황에서 싸우고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상식적으로 첼이 그렇게 판단하려 했을 때 톨비쉬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첼씨 주먹이 생각보다 매서우시던데요."
"그거였어?"
조금 어이가 없어진 첼이 고개를 들어 톨비쉬를 바라보자 톨비쉬는 그 때의 회상이 재밌는 것처럼 보였다.
"뭐랄까, 말리실 거라면 좀 더 우아하게 말리실 줄 알았죠."
"어떤 식으로?"
"마법으로 다리를 끊어버리신다든가."
그러러면 메테오 스트라이크쯤 날렸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랬다간 나도 무사하지 않았을 거란 말은 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힘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첼씨는 마법사니까 주먹을 드시는 게 더 낭비일 것 같았는데 아닌가 보군요."
"마법사라고 힘이 약하진 않은데."
"과연, 밀레시안이시니 제가 너무 안이하게 외견만 보고 평가했나봅니다."
힘이 약해봤자 어지간한 투아하 데 다난보다는 훨씬 강하겠지만 솔직히 첼의 외견은 근접전투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등에 걸린 스태프가 학구적인 인상을 더해주어서 영락없이 젊은 마법사로만 보인다. 톨비쉬가 같이 다녀본 경험으로는 요리가 능숙하고 야생풀에 해박하기도 했다. 기사가 술과는 인연이 없어서 그렇지, 와인에도 첼이 꽤 능숙하다는 것을 톨비쉬가 알았다면 영락없이 연구자형 마법사로만 보일 지경이었다. 사실은 로브가 아닌 옷을 입고 최전선에서 사도와 싸울 수 있는 전투 마법사에 가까웠다만.
밀레시안의 외견과 능력에 대한 편견을 수정하며 톨비쉬는 더 물었다.
"그럼 검도 어느 정도 쓰시는 건가요?"
"남들 하는 만큼은."
그게 밀레시안 기준인지 투아하 데 다난 기준인지 묻기에는 왠지 기묘한 분위기였다. 첼의 대답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던 탓이었다. 처음엔 그냥 저번에 있던 일을 얘기하던 듯한 톨비쉬가 어쩐지 호구조사하듯이 첼의 능력에 대해 물어보고 있어서였다. 톨비쉬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는 반응이었다.
"자꾸 여쭤봐서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드리죠."
"그정도는 아냐."
"하하, 첼씨는 까다로울지 몰라도 반응 자체는 알기 쉬워서 편한데요."
사람 놀리는 건가? 첼의 눈꼬리가 슬쩍 올라갔을 때 톨비쉬는 요령 좋게 다음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호기심은 알터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서요. 이를테면 첼씨가 싸우는 걸 처음 봤을 때, 괜히 알터가 그렇게 당신을 존경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의 이름은 헛소문이 아니었구나, 하고요."
톨비쉬가 그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이란 말을 입에 담을 때마다 첼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자기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낀 정령이 가방 속에서 조용히 울림을 보냈지만 첼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톨비쉬는 아마 이 반응을 알면서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제 주변의 마법사라면 역시... 피네겠죠. 피네가 얼마나 뼈를 깎는 수련을 했는지 본 적이 있습니다 마법의 수련은 성취의 과정이 제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도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 발판이란 것도 제가 하는 근접전투나 신성력 수련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죠. 피네도 조장을 맡을 만큼 대단한 인재지만, 밀레시안인 첼씨의 마법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저희와 세월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대체 어떤 노력으로 성취하실 수 있었는지 관심이 가버립니다. 끝없이 싸워야하는 기사에게 강함이란 미지의 영역이면서도 끝없이 발을 들여놓아야만 하는 곳이니까요."
차분하고 조리있는 말 속에서 첼은 점점 입을 다물고 톨비쉬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톨비쉬는 아마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겠지.
"그래서 저는 밀레시안 첼씨가 어떻게 살아오셨고, 어떤 식으로 강해지셨는지, 첼씨가 좋은 만큼 관심이 갑니다."
첼 스스로 객관적으로생각해봐도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인생이기는 했다.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 여신을 구하고, 드래곤의 감응자가 되고, 그림자 세계에서 반신이 되어 신들의 왕을 쓰러뜨리고, 왕국을 비극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거기서 끊어지지 않을 인생의 기록은 꼭 쉼표를 찍어야만 회상을 가능케 해주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물론 있다. 깔끔히 잊어버린 일들은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여신을 구할 때의 소소한 일 같은 것은 이미 너무 예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먼 예전의 일도 아닌 주제에, 쉽게 기억나지도 않고 떠올리려면 유예를 필요로 하는 기억이란 것은 건방졌다.
나는 그렇게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이 됐다고 말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림자 세계의 몇 가지 사건과 왕성 탈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다보니 강해졌다고 말하기만 하면 톨비쉬는 더 묻지 않을 것이다. 대답해줘서 감사하다고 또 웃으며 말해주겠지.
그렇게 강해진 끝에 나는 기억을 뜯겨버릴 것처럼 이상한 일을 겪었어.
첼이 마법의 길을 걸은 이유는 타인에게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밀레시안은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대개 그랬다. 그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다른 길을 걸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들어서 걷던 길이 어느 타인이 거쳤을 과정과 같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날, 첼은 마법으로 또 한번 누군가와 세상을 구하고 누군가는 구하지 못했다.
구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고, 구하려고 했어도 받아줬을지나 모르겠는데.
"첼씨?"
"……."
"혹시 제가 정말로 곤란한 것을 여쭤봤나요?"
"알면 됐어."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같은 화제는 삼가하죠."
정령이 깃든 무기의 울림을 이제 감지한 것처럼 첼은 가방에 손을 넣어 둔기를 꺼냈다. 톨비쉬와 와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첼은 아무렇지 않은 척 정령과 대화했고 톨비쉬는 가만히 기다렸다. 마법사가 완드가 아닌 둔기의 정령을 데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 타인의 입장에서는 꽤나 흥미로웠지만 오늘은 더 물어봤다간 무슨 꼴이 날지 몰랐다.
첼이 보여준 반응 자체를 마음에 담아둔 톨비쉬가 조심스레 고른 말을 입에 담으려던 차에 정령에서 손을 뗀 첼이 먼저 말했다.
"곤란했다기보다는."
"음."
"당신이 물어보니까 기분이 이상해졌거든."
"어라, 이런 건 생소한 얘긴데요."
생소하든가 말든가. 톨비쉬의 친절은 때론 누군가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 이상하신 건지 물어보는건 역시 실례겠죠?"
"알면 됐다고 했을 텐데."
털어놓을 만한 일도 털어놓는다고 무언가 달라질 일도 아니었다. 첼은 그나마 저 인간이 안경을 꼈거나 스태프를 들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남몰래 여기면서, 스태프 대신 둔기를 들고 뒤로 돌았다. 작별을 예고하는 몸동작에 톨비쉬는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뵙죠."
"난 별로."
견습기사들을 만나러가는 듯한 첼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톨비쉬는 첼이 말해준 이상함에 대한 의문을 마음 깊숙히 품었다.
그건 오직 첼이 다른 어느 기사도 아닌 톨비쉬에게만 취하는 태도였다.
'기다려볼까요.'
말해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당신의 전투 속에서 인생을 엿보고 인생의 안에서 추억을 엿보고 추억 속에서 당신의 근원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겠죠.
그게 마음의 문을 과거로 걸어 잠근 당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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