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님의 목 조르기 리퀘스트 (소재 제공에 마바님이 협력해주셨습니다)
밀레시안 첼을 데려왔습니다
어디 나를 막아봐.
견습 기사들 따위에게는 악몽보다 더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불씨가 옮겨붙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원인이랄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기도 버거울 만큼, 한참 전에 산산조각나버린 인형 곁에서 칼 한 자루에 의지해 몸을 일으킨 견습 기사 카오르는 이마에서 눈으로 흘러내린 피를 닦지도 못한 채 얼굴을 찡그렸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안일했다. 죽지 않은 게 아니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저쪽이.
'진짜 맞긴 합니까?'
'뭐가.'
'평소의 그 태도를 보고 있으면 당신이 기사단이 인정한 에린의 수호자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니면 어쩔 건데?'
카오르는 조장의 그 진지하지 못해보이는 눈웃음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조원들은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지 넌지시 조장에 대해 물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카오르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한 사람이었다. 임무나 훈련을 지시할 때 보면 카오르가 빈정댔을 때처럼 무능해보이지 않는데도, 카오르는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위화감을 지우지 못하곤 했다.
나른하게 반쯤 드러누워서 카오르의 훈련을 지켜보다가 시답지 않은 장난을 치고 가버리던 조장에게서 사람다운 무언가를 느낄 수 없어서였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조장의 능력을 인정하고 아래로 들어가긴 했어도, 조장이 가면을 쓰는 것처럼 웃으면 꺼림칙해지곤 했다.
지금은 차라리 그런 마음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앞의 조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 얼굴에 드러난 감정에 허상이나 거짓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를 막아보라고…… 했잖아?"
대체 누가 당신을 막지? 우리를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기 위해 신경을 쓰는 쪽이 더 성가셨을 텐데.
"조장님."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서서 쳐다본 조장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카오르는 생각하고 싶었다. 전투용 옷의 한쪽에 해머를 꽂아두고 손에는 가벼운 완드를 든 채 스태프보다 무거운 건 못 든다고 농담을 하던 사람이라고.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카오르는 그대로 멈췄다. 조장의 얼굴에 배어든 낯선 광기가 지나치게 솔직했다. 카오르가 거기에 망설이고 있는 사이 조장이 입 안으로 중얼거렸다.
뭐, 누구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정도는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키득거리는 모습이 지금 당장이라도 카오르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 같았다. 코리브 계곡의 깊은 언덕 안에서 부상당한 채 돌아가지 못하면 가만히 있어도 숨이 멈춰버릴 지경이었다.
"너부터."
일어나 있는 너부터 죽이면 될까? 시간은 충분히 끌었으니까, 그러면 바라는 대로 될지도 몰라.
아니란 걸 알면서도, 오늘은 아무도 그를 말릴 것이 처음에 없었을 뿐이었다. 스스로의 이성과 정령이 제동을 걸지 못했으니.
"첼씨……!"
조금만 늦었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몰랐다기에는, 너무 명백하게 의도된 장면이었다. 알반 기사단의 견습 단원들을 공격한 그 존재가 외부에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몇 명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각오한 채 도착한 장소에는 다행히도 피바다가 뿌려져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그래주기를 기대했던 듯이 쏘아진 빛줄기를 방패로 막은 기사는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하찮은 것을 집어던지듯이 붙잡고 있던 견습 기사를 내던진 아는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카오르가 눈을 뜨고 있었더라면 역시 웃는 얼굴로 무언가를 감추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런 사정은 모르는 톨비쉬는, 적어도 카오르보다는 카오르의 조장에 대해서 당연히 많이 파악하고 있었다.
원인에 대해서는 짐작만이 가능하다. 현 상태에서 대해서는 제법 논리적인 추론이 끝났다.
톨비쉬는 한 바퀴 굴러서 물러났다. 맞으면 절대로 무사할 수 없는 수준의 파이어볼트가 날아온 뒤 마력탄 연사가 쏟아지는 것을 방패로 막으며 톨비쉬는 한탄하지는 않았다.
밀레시안 첼에게 조금이라도 함께하기 위해서는 설령 사흘 밤낮을 샌 상태였더라도 이 자리에 달려와야 했을 테니.
생각보다 피할 만하고, 상처가 생겨도 다가갈 만했다. 역시 진심으로 상대를 죽여버릴 심산이 아니다. 아마 조금 전에 견습 기사에게 손대려고 했던 것은 톨비쉬의 인기척을 느꼈던 탓일 것이다.
톨비쉬는 신성력으로 몸을 보호하며 몸을 날려 태클을 걸었다. 험준한 산길에서 몸을 부딪치자 한데 엉켜 데굴데굴 굴러 듀얼건에도 완드에도 손을 뻗을 틈이 없게 만들 수 있었다. 체격 차가 나니 톨비쉬가 소년의 모습을 한 밀레시안을 깔아뭉개고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건 처음 느끼는 아픔일지도 모른다.
수없이 죽었었지. 어차피 눈을 뜨면 그 자리 그대로거나, 아는 곳에 있었어.
비슷했지. 죽는 것도, 살아나는 것도 말이야. 피부가 좀 패이거나 물어 뜯기는 정도는, 출혈로 앞이 어지러운 정도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어버리는 정도는 가장 험한 곳에 선 밀레시안에게 늘 있는 일이었다고 그는 몽롱한 채 생각했다.
아, 목이 무거워. 이대로 찢겨버릴 것 같은데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시야에 들어온 황금색 빛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것은 붙잡혀 있는 탓이었다.
왜 이렇게 됐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면서 억지를 부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방아쇠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보지 않으려고 했을 뿐.
"첼씨, 제발!"
어쩔 수 없는 균열이 아주 천천히 약한 곳을 누르면, 섭리가 그러한 것처럼 굴복한다. 어쩌면 일부러 그런 척하고 정신의 이음새를 느슨하게 놓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게로부터 결코 도망치지 못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처럼.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말이 계기를 제공했겠지.
무슨 말이었더라? 강한…… 강한 사람…… 물론 그들이 말하는 의미로 첼은 강했다.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고 나면, 그 황금색 빛으로 지금 첼을 억누르고 있는 자에게는 종종 보이곤 했다.
혼자 있는, 강한 사람.
홀로 서 있는, 강해져버린 사람.
얼마나 해야 첼이 멈출지 모르는 채 톨비쉬가 손에 힘을 주었다. 상대를 몸으로 제압한 상태에서 외상 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밀레시안 상대라고 해도 신체를 잘라내거나 하는 방법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목을 감싸 누르는 손은 다급하고 결연한 얼굴과는 달리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지기만 해서, 점점 몸에 힘이 빠지는 첼은 눈가가 뜨거운 채 기침을 한 번 뱉고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막아보라고 한 건 누가 막아주길 바랐으니까, 그러면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있거든.
그 애들은 막지 못할 걸 당연히 알고 있었어.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날 막아주길 바란 적은 없지만, 나쁘지 않을지도.
하얀 천이 늘어진 갑옷을 두른 황금빛 기사가 다시 말했다.
"첼씨!"
아, 더는 눈이 감기지 않는다. 그의 손가락에 힘이 빠지고 있어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질긴 목숨이 아주 잠깐도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하고 구차하게 여기에 남아버린다.
꺼지지 않은 생명이 반사적으로 눈꺼풀을 들어올렸을 때 붙잡은 손가락 위에는 하얀 로브를 입은 드루이드가 있었다.
타르라크, 미안하다고 전하면서도 나의 목을 조르며 숨통을 누를 수 있었을 이.
다리 아래에서 그 몸이 요동치지 않고 목줄기 아래로 펄떡거리던 숨결이 꺼져버리기 직전에서야 톨비쉬는 손을 놓았다. 털썩 주저앉아 물러나지 못한 것은 그 가는 몸이 아직도 아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잠시 눈을 뗀 사이 건틀릿의 차가운 쇠가 짓눌렀던 곳에는 붉은 자국이 어느새 검게 죽어가고 있었다. 톨비쉬는 다급하게 소년의 손목에 손을 가져가 쥐었다. 시체처럼 늘어진 몸에서 솜털같이 맥이 뛰고 있었다.
"아, 젠장……."
"첼씨……!"
"귀 아프니까 그만 불러."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뜬 첼은 헛구역질이 나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당연히 죽지 못했다. 이러느니 차라리 소울 스트림에 다녀오는 쪽이 기분이 낫다. 그래서 차라리, 그 손에 목을 붙잡혔다는 걸 안 순간 이대로 잠들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당신이…….
"쿨럭, 쿨럭."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숨을 쉬지 못했더니 몸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누워서는 기침조차 힘들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첼은 약간 편안해졌다.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상체를 톨비쉬가 일으켜준 덕분이었다.
"병주고 약 줘 지금?"
"약을 드릴 수 있다면 다행이겠군요. 제 손으로 첼씨를 죽이는 줄 알았거든요. 아마 견습 기사들을 정말 죽이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잠시 잊고 있었지만, 잘 움직이지 않는 목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전 내던져버린 카오르가 아직 정신을 되찾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고 해야하나, 그것보다는 미쳐버릴 것 같은 정신이 문제였지. 소울 스트림의 존재가 건재한 이상 그곳은 조금 더럽혀졌더라도 밀레시안 최후의 이성은 남아있었다.
누군가가 그곳에 손을 댄 이후로 종종 이상할 정도의 불안과 편집증적인 생각에 시달리곤 했다. 다른 밀레시안도 그러한 지 첼은 알려고 한 적은 없었다. 아마도 상냥한 인도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이렇게 되었겠지. 밀레시안은 소울 스트림과 그렇게 밀접한 존재이면서도 소울 스트림에 손을 대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그 흐름을 타고 이 땅에 발 붙이고 있을 뿐.
그러고 보니 당신이 소울 스트림에서 무얼 봤는지 들은 적은 없구나. 어쩌면 보았을지도 모르겠어. 거기에 있으면 영문을 모르게 편안해지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럴 리가 없었다. 거기서 흘러나간 내 생각들은 어디로 간 걸까, 내가 당신에게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것들이 거기에 있을까.
조금 전 눈을 떴을 때 그런 생각을 했고, 첼이 눈을 감았다가 정신을 되찾자 거기에는 여전히 그 신의 기사가 있었다. 나를 죽여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제에 죽이지 않으려고 할 인간, 그리고 기억 속의 드루이드에게 결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고 마는 자.
"아, 무심코 썰어버렸던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는 마법으로 다 태워버리실 뻔 했겠죠."
"사소한 데에 말꼬리 잡는 게 취미였어?"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걸 보니 괜찮아지신 모양이군요."
"사람을 죽이려고 해놓고 할 소리냐."
"그렇다고 진짜 죽일 수도 없지 않았습니까."
"나를 막으려면 그 정돈 되어야 할 거 아냐, 죽여도…… 됐다고."
어차피 돌아올 건데, 그 설원에서 미쳐버린 드루이드가 그토록 발버둥쳐도 나 하나를 진정으로 죽이지 못했는걸.
본심이 이런 식으로 드문드문 튀어나오면, 이 기사는 언제나 첼을 당황시키곤 했다. 등을 받쳐주고 있으니 얼굴이 가까웠다. 그 수려한 얼굴에 엄격한 빛을 띠고 톨비쉬는 대답했다.
"진심이십니까?"
"내가 이런 일로 농담하는 거 봤어?"
"원인도 이유도 결과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생명을 끊으라니, 그럴 수 있을 리가요."
말투 자체는 평소와 비슷하게 느긋했지만 실린 감정은 달랐다. 그건 아무리 다시 생명을 얻을 것을 알고 있더라도 살아있는 것을 함부로 단절해버릴 수 없다는 굳건한 의지였다. 고지식하고 성실한 데다가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답답해죽겠다고, 첼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쿨럭, 이렇게 반…… 병신으로 만들었냐고."
"제 판단이 틀렸더라면 지금쯤 후회하고 있었겠지요. 저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첼씨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으니까요."
사실은 기사답지 않은 도박을 걸었던 거다. 죽을지 살 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상대를 몰아넣고 부디 아슬아슬한 선에 멈추기를, 그렇게 톨비쉬가 소년의 숨통을 조이며 자신의 호흡마저 멈춰버릴 듯이 기원하고 있었다.
아직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손끝이나 겨우 움직일 정도였다. 따지자면 처음 겪는 종류의 부상이니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첼은 이를 악물고 팔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손가락은 완드의 손잡이를 쥘 수가 없었다. 인상을 쓴 첼 곁에서 톨비쉬가 담담하게 계속 말했다.
"뒷수습은 도와드리겠습니다."
"뭘 말야."
"견습 기사들과 연습 대련을 하려고 했는데 전투 중 흥분한 첼씨가 조금 지나치게 해버려서 중간에 제가 말렸다는 정도로 둘러대면 될까요?"
"다른 애들은 몰라도 카오르는 안 속을 거 같은데."
"속아주기 이전에 첼씨가 왜 그런 상태였는지 애초에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냥 그런 걸로 해둬도 괜찮겠죠."
"그러게."
"말해줄 생각도 없어보이시고요."
꼭 필요 없을 듯한 한 마디가 문제라고, 첼이 톨비쉬에게 이전에 말한 적이 분명 너댓 번은 있었을 것이다. 발끈해도 움직일 기운이 없으니 첼은 짜증난다는 솔직한 얼굴로 톨비쉬를 힐끗 보았다. 평소엔 꽤 알 수 없는 사람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그나마 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밀레시안을 보며 톨비쉬는 이젠 부드럽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내가 이 꼴인 게?"
한 마디 더 하긴 했어도 적어도 톨비쉬는 첼이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이유로 묻지 않았다. 물어보았더라면 첼은 그대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았을지도 몰랐다.
보여주지 않는 면이라는 게 있다. 그 드루이드에겐 지금처럼 꼴사나운 모습일 것이고 이 기사에겐 소울 스트림 너머쯤에 잠들어있을 무언가가 아닐까 하고, 첼은 아직 어지러운 기운을 감추지 못한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물을 먹은 옷처럼 무거운 몸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들어 첼은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새까맣게 죽어가는 목이 이프기 시작했다.
"첼씨가 죽을 뻔한 걸로 죽는 것처럼 나아지셨다면요."
얼굴이 좋아졌다고, 조금 전에 목을 졸랐던 상대에게 톨비쉬라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죽일 생각도 없었으면서 헛소리는."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아십니까."
"어차피 금방 돌아온다니까 그러네."
"밀레시안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도 저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돌아올 거니까 죽고 싶었다거나, 돌아오니까 죽어도 된다고 말씀하시고 싶은 거라면……."
투아하 데 다난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밀레시안의 섭리와 감각에 섣불리 다가오지 않은 채, 금발의 기사는 첼을 안아 들어올린 채 말했다.
"제가 싫으니 그러지 말아달라고 첼씨에게 부탁드리는 수밖에요."
"……."
"만약 누군가가 죽으면 그 당사자가 슬퍼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날 수 없고 얘기할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제 곁의 누군가가 죽는다면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주 명확하겠죠. 방금 전에는 멈추실 거라 믿고 어쩔 수 없이 첼씨를 몰아붙였더라도 마음은…… 이기적으로 결코 편하지 않았습니다. 첼씨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는 건 저였을 테니."
그 어느 다난도 첼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말로 살아돌아오고 환생하는 것을 본 이들은 모두 밀레시안들은 그러니 '괜찮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밀레시안에게 진짜로 가까이 왔던 자들이 아니면 대개 거기에서 멈춰버린다.
진정으로 너무 가까이 왔던 드루이드는 첼에게 강요인지 강박인지 모를 것을 남기고 세계에 삼켜지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 기사는 너무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서 정말로 곁에 있으면서, 그저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또 이런 식으로 날뛰고 싶으시거든 차라리 저를 찾아오세요. 견습들이 불쌍하지도 않나요?"
"부러뜨린 데도 없고 힐링 걸면 나을 정도고 기절만 시켰다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 제일 많이 다친 건 나야, 너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모셔다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린애처럼 안겨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도 거절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꾹꾹 눌러 참고있던 첼은 다리로 박차고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톨비쉬가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어차피 이 상태론 제대로 거동도 못하시잖아요?"
"아, 이러느니 죽는 게 나았어……."
이 말이 진심으로 느껴졌다면 톨비쉬는 조금 화를 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 첼의 어조는 평소에 농담을 할 때와 비슷했다. 짜증은 좀 난 것 같았지만 몸이 무거우니 첼은 될 대로 되라, 하고 눈을 감았다. 스스로의 호흡이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의 상처가 없어지 때까지 로브라도 입어야 하나 첼이 생각하는 참에 귓가에 목소리가 다가왔다.
"진심으로 안도했습니다. 첼씨가 지금 숨을 쉬고 계셔서."
소울 스트림은 언제나 하얗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 나를 향해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게만 대해주는 존재도 있어.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한쪽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자리가 생겼지.
바라보면 눈을 빼앗겨버릴 듯한 심연은 누가 만든 것일까. 그리하여 나는 그곳에서도 편히 머물 수 없게 되었다. 육체가 없이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안식조차 바라지 못한 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는 반신이라니, 어쩌면 마치 망령 같지 않은가.
그 심연에 번번이 침범당하는 것은 고의인가 실수인가, 첼은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 자리에는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첼이 심연에 끌려가지 않기를 바랄 이는 있었다. 죽음 너머로 도망쳐버렸다면 듣지 못했을 말이 귓가에 맴돌며 그 밀레시안은 숨을 내뱉었다.
이건 나를 위한 숨결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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