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맞추어주듯이 상냥하고 밝은 사람을 연기하면서, 부모님을 죽게 만들고 이질적인 신성력에 오염된 몸을 숨긴 채 기사단에 들어왔던 네가 아튼 시미니께 더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다고.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너는 네 상냥함이 세상과 타협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네가 타인을 위해 짓는 웃음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는데도,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하고 있는데도 그늘 속에서 너는 자신을 얽맨 채 나아가고 있었지. 그런 모습이 때론 위태로우면서도 의연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정식 기사가 되고, 조장이 되고, 점점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결국 네게서 균열을 보고 말았다.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을 모습을, 짐작하기만 했던 것을. 내가 멋대로 추정하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라는 형태를 갖추어 눈앞에 들이밀어지고, 너는 속죄하며 의연하게 다시 일어났어.
너는 눈물에 붙잡히지 않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 강했고 가시넝쿨처럼 발목을 휘감은 불안에서 무작정 도피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전부터 그렇게 알았다.
그건 소통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멋대로 너를 재단하는 일에 가까우니까. 그러니 네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나는 기다렸다.
드디어 네가 나에게 말했다. 등 뒤의 의무처럼 너를 평생 따라다닐 짐은 가벼워졌을지언정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타인이 결코 나누어 받을 수 없는 짐 아래에서 너는 힘겨워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완드와 방패를 든 채 입을 열었고, 나는 네 곁에서 듣고 있었다.
이제부터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해야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즐겁고 행복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고 네가 나에게 최초로 말했다. 이 싸움이 끝난 다음에, 여유가 생긴 다음에, 자신을 둘러싼 마음이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들은 이로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피네, 누구에게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그건 과거에서 찾는 것도 미래로 미뤄버리는 것도 아냐. 지금 네가 지니고 있고, 언제나 찾아낼 수 있는 권리가.
무수히 많은 의무와 압력 앞에서, 하잘 것 없는 인간이 행복을 찾고 싶어하는 것이 죄라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아직 너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너에게 죄가 있다면, 행복을 찾은 네 웃음이 나의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죄라고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