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듀얼리스트들이 심연 페카 = 페상 던전 도는 이야기
평소에 느낀 이미지대로 작성했습니다.
길드 프로필 블로그 → http://duelists.tistory.com/
심연의 아래에는 무시무시한 장소가 있다. 침범을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무수한 공포와 위협을 휘감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것들의 기괴한 울음 소리를 들으며, 모험가들은 심연 아래에 갇혀 그저 전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원래부터 하나 하나 성가신 상대였다. 마력으로 폭발한 파편이 시체의 몸에 부딪쳤지만 힘없이 떨어져나갔다. 자기 키만한 활을 든 자그마한 소녀가 울상을 지으며 뒤로 뛰었다.
"싫어! 저거 싫단 말이야!"
"……."
곁에서 석궁을 조용히 등 뒤에 맨 키가 큰 인영이 양손에 검을 들었다. 한 발 물러난 소녀가 박수를 쳤다.
"서장님이 최고야!"
손에 든 것이 장궁이고 옆구리에 매달린 것이 비만 부르는 실린더이니 지금은 정말로 박수치면서 응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서장님이라고 불린 이가 질기고 튼튼한 구울을 하나씩 처단하는 사이 저쪽에도 작은 소녀와 똑같은 불만을 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 되게 많네."
마법사처럼 보이는 소년이 스태프를 빠르게 치워버린 채 가방에서 검을 꺼내드는 사이, 손상은 입히지 못해도 밀어내기라도 할 목적으로 그 곁에서 정말 작은 소녀 마법사가 무표정하게 파이어볼을 고속으로 캐스팅했다. 하나, 둘, 폭발로 많은 것들이 날아가는 사이 소년도 검을 들고 구울들을 처리하는 데에 가세했다.
이미 상당한 수의 구울을 베어넘긴 사람도 있었다. 피시스에서도 춥지 않을 듯이 따뜻해보이는 로브를 입은 소년이 너클 하나에 의지해 적들 가운데에 뛰어들자 장대같이 키가 든 여자가 거대한 검을 든 채 뒤따라 등을 맞대었다. 소년이 입은 로브 모자에 달린 하얀 털장식이 반쯤 붉게 물들어 있었다.
"괜찮소, 클로드?"
"괜찮아요."
사난사씨는요, 하고 되묻기도 전에 다음 적이 왔다. 마지막 구울을 쳐낸 꼭두각시가 질주하며 새로운 적을 맞이했다. 해골인지 오거인지 구분도 안가는 것들이 공중으로 날아갔다가 추락했다.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와이어가 달린 핸들이 방향을 꺾는다. 구부렸다가 펴면, 바닥에 촘촘하게 깔린 그물이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되어 시체 조각까지 끌어담았다. 철갑을 두른 꼭두각시가 홀연히 사라지고 나면 몸을 피하고 있던 사람의 차례였다.
"뒤는 부탁할게요!"
캐스팅이 가장 빠른 소녀 마법사가 이정도에는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이 완드를 들어 휙 휘두르자 화염구가 낙하를 준비했다. 그 짧은 사이에 검을 던져놓고 푸른 빛이 감도는 스태프를 잡은 소년이 눈부신 섬광을 쏘았다.
그물이 사라지고 하나에 섬광, 둘에 폭발. 일시적으로 시야가 사라질 만한 강렬한 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서장님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석궁을 들고 빛의 틈새를 노렸다. 다음, 명중,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파편들이 적의 몸에 깊숙이 파고 들었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걸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이어볼은 방금 썼어, 첼."
안 된다는 뜻이었다. 소녀 마법사가 마나 실드 아래에서 조용히 파이어볼트를 캐스팅하며 한 마리를 쓰러뜨렸다. 소녀보다 캐스팅이 느린 첼이 불만스럽게 대꾸했다.
"난 아까 썼다고."
구울과 다른 것들이 섞여있을 때 약간 아깝게 날려버린 마법이었다. 저만한 수가 몰려오면 역시 범위가 큰 마법은 캐스팅할 시간이 없었다. 첼은 갈고리인지 발톱인지 모를 것을 피하며 소녀 마법사와 옆으로 갈라진 뒤 외쳤다.
"세미테일! 스칼레타!"
굳이 부를 필요도 없이, 양쪽에서 조준은 끝난 뒤였다. 자기 키만한 활을 든 세미테일과, 허리춤에 핸들을 꽂아놓고 석궁에 볼트를 장전한 스칼레타가 약간의 차이를 두고 각자 마력을 실어 쏘아보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텅 빈 활을 든 세미테일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왜 빗나가는 건데?!"
"조심하시오."
세미테일 앞에 뛰어든 사난사가 정말로 세미테일보다 클 지 모르는 대검을 들고 박력 넘치게 한 바퀴 돌아 적을 쳐냈다. 그 사이 바쁘게 다시 핸들을 든 스칼레타가 철갑 꼭두각시를 꺼냈다. 갑옷을 입은 거인, 콜로서스 인형이 손짓에 따라 굉장한 속도로 돌진해서 가장 가까이 있던 적을 쳐냈다. 이걸로 아주 적은 시간을 벌고, 그 다음은 다시 그물을 쳐서 시간을 끈다. 각자 악전고투하고 있는 마법사들쪽을 쳐다보며 스칼레타가 신호했다.
"네헤미아!"
"알았어."
과연 가장 빠른 마법사답게 다음 파이어볼 시전 준비가 끝난 네헤미아가 완드를 들어올렸다. 그쪽 파이어볼이 날아갈 지점을 쳐다본 첼이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 캐스팅을 시작했다. 영창에 따라 휘둘러지는 스태프 아래에 붉은 기운이 어리고, 마법진을 침범하려는 화살을 주먹으로 쳐서 떨어뜨린 클로드가 바닥에 착지했다. 첼이 씩 웃으며 스태프를 내리자 마법진이 사라지고 준비가 끝났다. 네헤미아의 파이어볼이 한 차례 모든 것을 정리한 순간 어둠 속에서 또 적이 기어올라오고, 꼭두각시를 거두어들인 스칼레타가 세미테일의 손을 잡고 뛰었다. 계산이 끝난 서장님이 조준했던 볼트 끝을 조용히 내렸다.
"끝났군."
화염을 머금은 운석이 공간을 넘어 바닥에 메다꽂혔다. 그 앞에서 살아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연을 뚫고 돌아가는 데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한 법이었다. 한 칸 전진한 뒤 세미테일이 조금 전에는 무용지물이었던 실린더를 들고 꼼꼼히 점검했다. 사실 조금 전에는 주의를 들은 터였다. 화살이 빗나가는 것은 자신에게도 종종 있는 일이니(세미테일에겐 꽤 자주 있긴 했지만) 무어라 하진 않겠지만, 중요한 상황에서 실린더가 오작동하면 모두의 상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담당한 대로 잘 해달라는 말을 들은 세미테일은 아까는 연금술을 쓸 시간도 없었지만 시간이 생긴 지금은 해낼 수 있다며, 콧노래를 부르며 실린더에 사용할 결정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거기서 좀 떨어진 채, 서장님도 한 팔에 실린더를 장착하고 연금술의 시전 범위를 판단하여 거래를 재었다. 거기에 종종 걸어온 네헤미아가 말을 붙였다.
"다친 곳은?"
서장님은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고 네헤미아는 끄덕였다. 과연 파티 리더라고 할 만했다. 힐링을 가볍게 걸면 나을 정도인 것 같았다. 힐링 완드는 갖고 오지 않은 네헤미아가 조용히 첼에게 바톤을 넘겼다. 완드를 준비해둔 채 아무렇게나 앉은 첼이 피곤하다는 얼굴로 포션을 하나 마셨다. 바깥에 이웨카가 없는지 마나의 회복 속도가 너무 느린 탓이었다. 저쪽의 응급 치료가 끝나면 파티 힐링을 걸 생각이었다.
"자, 클로드는 다 됐어요."
붕대가 부드럽고도 단단하게 몸에 둘러졌다. 어지간한 힐러보다 나은 솜씨에 클로드는 붕대가 좀 감겨있기는 해도 이제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로브가 반쯤 피로 더러워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상처가 심한 편이었던 것은, 가끔 뒤로 물러서서 싸울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클로드는 계속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과 아군이 피아 구분 없이 날려대는 수많은 공격들 속에 쓰러지지 않은 채 서서 묵묵히 적을 쓰러뜨린 자의 상처가 이 정도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뺨에 패인 상처에 귀엽게 자른 붕대가 임시 거즈로 붙어있었다. 어색한 느낌에 손을 올려 뺨을 만져보자 확실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힐링도 힐링이고 포션도 마셔둘 필요가 있어보였다. 일단 응급 처치는 완벽했다.
"고마워요, 스칼레타씨."
"내가 잘할 수 있는 거니까요!"
활짝 웃으며 스칼레타가 새로 붕대를 잘랐다. 대검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적에게 팔을 공격당한 사난사가 팔을 내밀자 그 자리를 깨끗이 닦고 상처가 잘 붙을 수 있게 처리를 한 뒤 붕대를 감는다. 힐링을 건다고 해도 흉터가 남을 것 같았다.
"팔에 이렇게 크게…… 괜찮겠어요 난사?"
"소저가 치료해주고 있으니 문제없을 것 같소."
"으음, 좋아요. 괜찮을 거라고 믿을게요."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상처가 크지 않았다. 마법사들이야 적과 가까이 갈 일이 적으니 확실히 부상이 적었고, 세미테일도 화살이 빗나갔을 때 적의 접근을 허용해서 얻은 상처가 약간 있는 정도였다. 서장님은 네헤미이가 물어본 대로 문제가 없었으니 남은 것은 치료해주고 있는 본인뿐이었다. 다인 전투에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다루기 힘든 꼭두각시 인형 때문에 스칼레타의 손과 몸에 부상이 보일 만큼은 쌓여있었다. 클로드나 사난사처럼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준은 아니어서, 스칼레타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치료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사난사가 지적하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스스로 하려는 거요?"
"아, 그렇지 참."
"이리 와, 스칼레타."
왼손에 힐링 완드를 들고 스칼레타에게 첼이 손짓햇다. 응급치료라면 취미로 배운 스칼레타 다음으로는 드루이드 수행중인 첼이 가장 뛰어났다. 쪼르르 달려가서 얌전히 앉은 스칼레타까지 응급치료가 끝나자 첼이 힐링 완드를 두세 번 휙휙 움직였다. 포션을 마실 필요도 없이 거의 활기가 돌아왔다.
거리 계산은 끝났다. 파티원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실린더를 장착한 두 명이 정위치에 섰다. 서장님이 동쪽, 세미테일이 서쪽. 완드냐 스태프냐를 고민하던 네헤미아가 완드를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첼은 허리에 완드를 꽂고 새까만 듀얼건을 가방에서 집어들었다. 스칼레타는 거의 다 부서진 인형의 이음새를 붙이고 연결하고 외장을 덧대어 새 것처럼 수리해낸 뒤 남은 볼트의 개수를 세었다. 클로드가 너클을 끼고 몸을 푸는 곁에서 사난사가 피를 닦아낸 검의 예리함을 재차 확인했다.
"준비?"
리더 대신 묻는 사람은 세미테일이었다. 서장님을 빼고 한 명씩 눈을 맞춰보자 다들 각자 신호를 보냈다. 네헤미이가 눈을 두 번 깜빡이며 캐스팅을 시작했다. 클로드가 전투 자세를 취한 채 자리를 잡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사난사가 대검을 언제라도 들어올릴 수 있게 바닥에 끝을 댄 채 섰다. 스칼레타가 등에 석궁을 맨 채 꼭두각시 갑옷의 와이어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첼의 곁에서 마력탄이 철컥거리며 장전되는 소리가 났다. 세미테일이 서장님과 눈을 마주치자 두 사람의 실린더가 출력을 개시했다.
주어진 결정을 원하는 형태의 힘으로 바꾸는 기술, 연금술이 만들어낸 기적 아래에서 세미테일이 입을 열었다. 심연을 파헤치기 위한 전주나 다름없는, 전장의 서곡이 울려퍼진다.
다음의 문으로 가는 열쇠를 건드리면, 아직 멈추지 않은 심연이 그 끝으로 오라며 그들에게 손짓한다. 심연의 지배자를 쓰러뜨릴 때까지 돌아갈 수 없노라고 속삭이며, 전진하는 자들을 어둠으로 감싸 피를 부르고 있었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드] 나누는 온기 (0) | 2015.12.05 |
---|---|
[카즈피네] 값의 문제 (0) | 2015.12.04 |
[카즈피네] 너에게 전하는 사실 (0) | 2015.11.24 |
[톨비밀레] 숨쉬는 자에게 고한다 (0) | 2015.11.20 |
[사도화] 나를 돌아보지 말아요 (0) | 2015.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