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애가 뜨개질 해서 길드원들에게 나누어주는 얘기
찬조출연 사난사
"오늘도 레타 소저는 신기한 것을 하고 있소."
"신기한가요?"
나무 막대기 두 개에 두터운 실을 꽂아 이리저리 돌리면 마치 길쌈을 한 것처럼 무언가 생겨난다니, 집안일은 많이 해봤어도 이런 건 난사가 온 곳에서는 없던 기술로만 보였다.
"비단 위의 자수라면 본 일이 있지만 말이오."
"우리 주변에는 이런 걸 하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겠네요. 티르 코네일에선 추울 때 많이들 하는 것 같았지만요."
"거기서 배운 것이오?"
"아뇨, 가끔씩 노라가 도와준 적은 있지만요."
아마 털실을 끼운 바늘마저 핸디크래프트 키트로 직접 만들었을 소녀는 까만 바탕에 빨간색과 남색으로 무늬를 넣고 있었다. 둥글둥글하고 작은 모양새가 귀여웠다. 역시 신기한 손놀림을 구경하던 사난사가 쌓여있는 실뭉치를 피해 곁에 앉았다.
"양이 꽤 많구려."
"거의 다 끝났어요. 세 개만 더 하면 되니까."
"종류가 다 다른 것 같은데, 봐도 되겠소?"
"얼마든지요."
난사가 처음 집어든 것은 구멍이 뚫린 듯한 모양새를 가진 물건이었다. 난사 자신의 손보다 조금 작아보여서 무엇인가 했더니, 촘촘한 실로 그물처럼 짜인 채 손가락이 뚫인 까만 장갑이었다.
"반쪽 장갑이오? 첼이 이런 것을 끼고 다녔던 듯한데."
"그건 첼 오빠 줄 거예요."
"확실히 잘 어울리겠구려. 다른 것들도?"
노리개처럼 생긴 장식 두어 개가 보였다. 레타가 바늘을 놀리던 손을 멈추고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서장님, 이건 네헤미아. 색깔 맞는 실 찾기가 힘들었어요."
부드러운 고동색과 빛나는 분홍색, 한쪽은 색깔만큼이나 차분하고 한쪽은 귀여운 장식이었다. 레타는 잘 되었다며 난사의 허리끈에 고동색 장식을 매달았다. 서장님과 그나마 키가 비슷한 사람에게 시험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허리에 매달린 모습을 보아하니 받을 본인에게 주면 얼추 옷에 어우러질 것 같았다.
"과연, 이런 장식이군."
"거추장스러운 건 안 될 것 같아서요."
"이쪽은 로브에 매달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다른 것이오?"
"네헤미아의 활에 어울리게 만들었어요. 똑같은 색의 활이 없어서 상상으로 만드느라 조금 애매한 것 같지만……."
곁에 놓여있던 푸르고 긴 활 하나의 끝에 분홍빛 장식을 매달자 확실히 그랬다. 이건 직접 본인에게 주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았다.
"주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 괜찮을 거요."
"그래도 기왕 만드는 거 완벽하게 주고 싶은 거니까요."
"소저는 철저하구려."
"아뇨, 이건 조금 타협해버린 건데요……."
"소저의 마음이 닿는다면 다들 기뻐할 거요. 아직도 많이 있군. 이 커다란 건?"
보라색 실에 하얗고 반짝거리는 가는 무늬가 들어간 것을 보니 누구에게 줄 것인지 명백했다. 세미테일의 드레스가 생각나는 배치였다.
"난사의 고향은 복식이 많이 다르다고 했었나요? 이건 그러니까, 이렇게."
거의 다 완성된 무언가를 내버려두고 레타가 그 큰 뜨개질감을 들어 난사의 어깨에 걸쳐보았다. 어깨가 반만 덮이는 느낌이었다. 소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역시 세미테일 언니한테 맞춘 거라 난사에겐 너무 작네요."
"어깨에 두르는 것이구려."
"케이프라고 해요. 추울 땐 따뜻하고 춥지 않을 땐 포근하고 좋은 느낌이 들죠."
"세미테일에게 잘 어울리겠군. 이 모자들은 누구 것이오?"
방울이 달린 하늘색 모자와 아무 장식도 달리지 않고 가볍게 무늬만 들어간 검은색 모자가 있었다.
"크로우 오라버니랑 린 오라버니 거예요. 두 사람 다 모자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이 하늘색은 확실히 크로우에게 알맞소."
"린 오라버니에겐 검은색밖에 쓰기 힘들어서 아까워요. 더 예쁘게 만들 수 있는데."
"소저가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역시 클로드의 것이오?"
검은 바탕에 하얗게 들어간 큰 무늬, 그 위로 지그재그로 겹쳐지는 빨간색과 푸른색, 바늘을 든 소녀가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됐어요."
"장갑…… 인가?"
"헤헤."
마무리를 하고 가위로 실 끝을 자르더니 레타가 양 손에 다 만들어진 장갑을 꼈다. 손 크기가 비슷하니 자기 자신을 참고로 만든 모양이었다. 손가락 네 개가 한 곳에 들어가는 장갑은 아주 귀여웠다.
"클로드에게 어울릴까요?"
"잘 어울릴 것 같기는 한데…… 아주 예쁘오."
그런 모양의, 그러니까 벙어리 장갑이면 무기를 쥐기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난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레타는 싱글벙글 웃으며 장갑을 뺀 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까만 뭉치를 집어들어 내밀었다. 실 아래에 파묻혀서 난사가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여기요."
"음?"
"난사 거예요."
"이건…… 이렇게 하는 건가?"
훤히 드러나있던 손목이 검게 덮였다. 편하게 팔을 드러내는 일이 많은 난사에게는, 장갑처럼 촘촘한 실로 짠 보호대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던 덕분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어울려서 뜨개바늘을 든 소녀가 다시 웃었다.
"잘 맞네요! 마침 왔으니까 제일 먼저 줄게요."
"고맙소. 이런 걸 받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 게 많은데 난사의 것도 당연히 있죠."
털실로 온기를 나누는 소녀가 그 안에 파묻힌 듯이 부드럽게 웃는다. 정말이지 상냥하고 나누기를 좋아나는 밀레시안이다. 소녀는 새 실을 집어들었다. 소녀가 애용하는 머리장식과 똑같은 파란색이다.
"더 만들 거요?"
"목도리를 뜰 거예요."
"소저에게 잘 어울리겠소."
"내 건 아니지만요."
"그런 색을…… 아, 그렇군. 다른 사람에게 줄 거라면 역시."
"와지가 목도리가 있었으면, 하는 걸 들었거든요. 목도리는 금방할 수 있으니까, 이게 끝나면 시영에게 줄 것도 만들고 싶어요."
"굉장하군. 손재주로는 역시 소저를 따라갈 수가 없겠소."
"아니에요, 아직 미숙한걸요."
"목도리 다음은 무얼 할 생각이오? 겹치지 않게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가멧에게는 담요를 떠주고 싶었는데 그만큼 할 실이 다 떨어져버렸어요. 담요는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하니까…… 문게이트를 타고 사와야할지도 모르겠네요. 시영은 머리카락이 예쁘니까 더 가는 바늘로 하얗게 레이스를 떠서…… 이건 처음 해보려는 건데 말이죠……."
자수나 길쌈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검사와 손으로 하는 거면 뭐든 좋아하는 소녀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이나 떠드는 발치에는 오색빛깔의 털실이 나를 집어들어달라는 듯이 굴러다녔다.
그것들이 각자 다른 실이 아니라 하나로 엮여 누군가의 선물이 될 때까지 보낸 시간도, 선물을 받을 사람들이 공유한 시간도 따뜻해지기를.
밀레시안은 추위를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고 해도, 나눌 온기가 없지는 않아.
클로드-벙어리장갑
난사-손목보호대
첼-반장갑
서장님-허리장식
네헤미아-활 끝에 거는 장식
세미테일-케이프
린-모자
크로우-방울모자
가멧-담요
와지-목도리
시영-머리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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