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조님께서 신청해주신 글 커미션입니다
밀레시안과 톨비쉬를 지켜보는 카나의 이야기
아발론 게이트에 온 뒤로, 요즘은 하루하루가 충만해요! 전에는 안 그랬던 건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 와서 좋은 일도 많이 겪고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수련도 임무도 전보다 즐거워졌거든요. 갑자기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저기, 음…… 이게 다 조장님 덕분이 아닐까요?
조장님을 처음 뵈었을 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당연한 거였을까요? 언니가 말했던 거나 떠도는 소문만 들어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잖아요. 게다가 견습 기사가 된 이후로는 주로 기사단 사람들과 지냈으니까, 밀레시안을 가까이서 만나는 것도 처음이라고 할 만 했어요. 어떤 분일까, 어떤 분일까 하고 만난 조장님은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달랐어요. 저도 모르게, 에린을 구한 영웅이시라고 하니까 굉장히 웅장하고 위압감 있는 분을 상상했던 걸지도요.
제가 만난 조장님은 사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검을 드는 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싸움에 어울리지 않으신다는 인상이었어요. 이 아발론 게이트에 있는 남자 견습 기사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 유독 작아보이실 정도였거든요. 로간씨와 나란히 서 있으면 로간씨가 어른이고 조장님이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차이도 났고요.
저는 조장님이 가까이 오셨을 때 비로소 어떤 분인지 잘 볼 수 있었어요. 조용하고 차분하게, 조장님은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해주셨고 저는 여전히 가슴이 뛰는 채로 너무나 기뻐서 진정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았어요.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 와서, 기사가 되기 위한 걸음을 내딛고, 에린의 영웅 아래에서 수련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았거든요.
그렇게 조장님과 만나서 시간이 조금 흘러서 저는 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어요. 조장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여기에 다시 설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조장님은 평소에는 먼저 말씀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셨어요. 그래도 아발론 게이트로 저희들을 만나러 오실 때마다 세심하게 저희를 신경써주시는 건 알 수 있었죠. 로간씨에 대해 걱정해주시는 것도 그렇고, 엘시가 딸기 우유를 마시고 있을 때엔 다정한 분이시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저와 얘기하실 때엔, 제가 조금…… 무식하게 수련하는 걸 보셨으니까, 다친 곳은 없냐고 챙겨주시거나 가벼운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시면서 제 긴장을 풀어주시려고 하는 게 전 너무너무 좋아요. 하루에 한 번밖에 얘기할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고 아쉬워서 천 번 휘두르기 수련이 끝나고 어서 내일이 왔으면 할 정도로요.
그래서인가, 조장님만 보면 요즘 웃음이 나와요. 아발론 게이트의 문 앞에서 그분이 보일 때마다 손을 흔들면서 클로드 조장님! 하고 부르면 조장님은 쑥쓰럽다는 듯이 아주 살짝 고개를 돌려 이쪽을 봐주셨어요. 제가 긴 임무를 가면 조장님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굉장히 아쉽지만, 돌아올 때에 아발론 게이트에서 고생했다고 말해주시던 조장님도 정말 좋아요.
처음 만났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줄곧 가슴이 뛰고 있을 정도로요, 헤헤.
조장님은 저희에게 할 일을 지시하시고 나면 햇볕이 드는 곳에서 책을 읽으시곤 했어요. 저는 검을 휘두르면서 종종 그쪽을 보곤 했는데, 아발론 게이트를 드나드는 기사단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조장님에게 익숙해진 다음에는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을 걸지 않았어요. 저희 조장님은, 음, 뭐라고 해야할까…… 대화하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진 않지만, 어쩐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기엔 죄송한 느낌이 들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엘시가 조장님이 오시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로간씨는 아무 말 없이 간식을 두고 돌아오는 걸지도 몰라요. 저도 사실 먼저 말을 걸기엔 조심스러울 때가 많거든요. 정말 좋아하는 조장님이지만, 그래서 조장님께 제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면 어떡하지 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네요. 수련을 하다가 놓쳐버린 검을 가져다 주셨을 때만 해도 어찌나 죄송했는지 몰라요.
그런 조장님께 유독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분들이 있어요. 언니는 그다지 조장님과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지만, 아발론 게이트에서 늘 경계를 서고 있는 알터 선배라든가, 기사단 전투조의 여러 일을 도맡고 계시는 톨비쉬님은 종종 조장님과 대화하시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적이 있어요. 톨비쉬님은 아주 바쁘실 것 같은데도, 아발론 게이트에 오셨을 때 조장님이 계시면 꼭 대화를 나누고 가셨어요. 저도 톨비쉬님처럼 자연스럽게 조장님께 말을 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조장님은 톨비쉬님과 함께 계실 때엔 저희들 곁에 오셨을 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보이셨어요. 역시 대단한 기사인 톨비쉬님과 조장님이시니까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걸까요? 저나 다른 견습 기사들과 얘기하실 때엔 뭔가 고심하시는 분위기가 있던 조장님이, 톨비쉬님의 말을 들으며 평온한 얼굴로 앉아있으신 걸 보면 신기한 기분이 들었어요. 자세히 들은 적은 없지만 아마, 안부 인사를 하거나 최근 기사단 일에 대해서라든가, 그런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도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 게 신기하고 조금 부럽기도 하고. 제가 언젠가 훌륭한 기사가 되면 조장님 곁에 나란히 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그러다가 한번쯤 더 폭발을 일으킨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근데 그게 대체 어느 날부터였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일주일이 넘는 임무를 다녀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요? 아니면 그냥 그동안 제가 느꼈던 것들이 전부 착각이었던 걸지도 모르죠.
아무튼 임무를 다녀와 다시 수련을 시작하려고 조장님께 조언을 부탁드렸는데, 아발론 게이트의 문 옆으로 슈안님과 인사하는 톨비쉬님이 보였어요. 조장님은 저를 봐주시느라 그랬던 건지 묵묵히 검을 들고 시범 동작을 보여주셨죠. 그걸 따라하려다가 저는, 톨비쉬님이 이쪽을 보고 계신 걸 알았어요.
"클로드씨, 잘 지내신 것 같군요."
"……네."
"검을 잡으신 건 오랜만에 보는군요."
"아마도요."
조장님은 제게 몇 번 더 시범을 보여주시고는 톨비쉬님에게 고개만 끄덕이듯이 목인사를 한 뒤 엘시가 있는 쪽으로 가셨어요. 조장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손목을 움직이던 저는 위화감을 느꼈어요. 저쪽의 조장님과, 이쪽의 톨비쉬님 사이에서요. 이전까지 두 분 사이에서 본 적 없던 기묘한 거리감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게 주변을 휘감고 있었죠. 톨비쉬님은 아주 잠깐 조장님 쪽을 보시다가 안쪽으로 들어가셨고, 저는 조장님과 톨비쉬님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조장님 쪽으로 다시 오시지는 않은 톨비쉬님이 아발론 게이트에서 벗어나시고야 저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고 별다른 말씀 없이 조장님도 아발론 게이트를 떠나셨죠.
그런 어색함은 본 적이 없었어요. 조장님과 사이가 어색한 견습 기사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달랐거든요. 오늘 톨비쉬님과 조장님의 모습은 차라리 언니와 조장님만 단 둘인 쪽이 덜 어색해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 후로는 조장님과 톨비쉬님의 모습이 문득 생각나면 신경이 쓰였어요. 정말로 제 착각이었고 두 분은 언제나 그런 느낌이셨던 걸지도 모르지만, 편안하게 대화하는 두 분을 보았던 적도 분명 있었으니까요. 온화하게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조장님을, 저는 분명 기억하는데.
……어쩌면 몰랐어도 될 일도 저는 이제 기억하고 말게 되었지만요. 제가 느꼈던 것들이 착각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수련을 하느라 깨어있었던 건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노력이 제 장점이니까요.
그 날은 유난히 느낌이 좋아서 늦게까지 훈련을 했어요. 엘시야 일찍 자러 갔고 먼저 돌아가는 로간씨가 무리하지는 말라고 해주셨죠. 하나, 둘, 하나, 둘. 조장님 아래에서 더 강해진 제가 되고, 조금씩이지만 느리게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저를 보여드리고 싶었으니까요.
호기심은 정말 나쁜 건가봐요. 언니가 위험할 것 같으면 반드시 안전한 길을 택하라고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걸 보니 전 역시 정식 기사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일전에 아발론 게이트 바깥에서 유령을 본 것 같아서 도망친 일이 있었는데, 이웨카가 뜨고도 몇 시간이 지난 때에 기척을 느낀 것 같았어요. 평소라면 알지 못했겠지만, 그 날은 훈련에 매진하면서 감각이 예민해지기라도 했던 걸까요. 저는 혹시 유령이어도 이제는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자신감을 안고 검을 쥔 채 기척이 있는 곳을 기웃거렸어요. 무언가가 있으면 확인하고, 아무것도 없으면 그만 돌아가려고 했거든요.
저, 정말 후회는 안 하니까요. 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후회일까요? 하지만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은 어쩐지 들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알게 되었을 테니까.
키가 큰 그림자는 제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는 분이었어요. 어슴푸레하게 달빛에만 비춰져도 모를 수 없는 엘베드의 문장이 들어간 갑옷을 입은 분, 톨비쉬님. 그리고 그분 체격의 반도 되지 않을 것처럼 왜소해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강하고 다정한 밀레시안, 저희 조장님.
조금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조장님께 얼굴을 내려 높이를 맞춘 톨비쉬님이, 아무 말 없이 다가가셨어요. 말씀하셨더라도 제게 들릴 만한 거리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조장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어요. 보는 제게는, 그대로 굳어버리신 것 같이 느껴졌죠. 아마 저도 굳어있었겠지만요.
조금 진정하고 생각해보면 그건 누가 보아도 애틋하다고 할 만한 입맞춤이었어요. 조장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계시던 톨비쉬님이, 조금씩 경게선을 넘어 손을 내밀고 계셨죠. 저는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채 그 너머에서 두근거리며 행복해하고만 있던 경계 위에서, 톨비쉬님이 말하시는 건 간신히, 혹은 어쩔 수 없이 들을 수 있었어요.
"제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역시 갑작스러웠을까요.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
"저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클로드씨."
기억 속의 위화감과 어색함의 정체를 그렇게 알아버린 저는, 자연스럽게 조장님께 시선을 향하고 말았어요. 제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킬지도 모르는데, 그 전까지 발을 떼지 않았던 건 굉장히 조장님과 톨비쉬님께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더 생각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조장님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라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거든요.
제 기억속의 조장님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던 건, 톨비쉬님을 신경쓰고 계셨으니까 그러셨을 수밖에 없다는 걸요.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같은 건 정말 한참 이후에나 생각났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옷도 갈아입지 않고 신발에는 흙이 묻은 채로 방 안에 뛰어들어와서 쓰러졌나봐요. 검을 던져놓고 뭘 했는지 베개에 이불에 정리하지 않고 나갔던 물건까지 뒤섞여서 엉망진창, 분명 제 얼굴은 더 엉망진창이었겠죠. 눈두덩이 새빨갛게 쓰라릴 정도로 울었던 게 아닐까요. 거울을 보면 제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았겠지만, 그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훌쩍거리면서 주섬주섬 방을 멍하니 정리하는 절 언니가 보기라도 했으면 큰일이었을지도 몰라요. 왜 이렇게 됐는지,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울었는지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누가 와도 괜찮을 정도로만 정리를 얼추 끝낸 저는 결국 잠옷으로 다 갈아입지도 못한 채 바닥에 일단 드러눕고 말았어요. 몇 번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 나니 그제야 현실 감각이 돌아왔죠. 어지럽혀진 걸 제자리로 단순히 되돌리기만 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한 게 효과가 있기는 했나 봐요.
그래도 깨달아버린 이상 잊을 수는 없겠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그런 얼굴을.
조장님은…… 그랬어요. 아무런 큰일도 벌어지지 않고, 예상 밖의 걱정도 없이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실 때 제일 평온해보이셨죠. 그게 제가 아발론 게이트에서 보던 클로드 조장님, 제가 좋아하는 분.
그리고 그분께 톨비쉬님이 말을 섞으실 때마다 조장님은 그 평온함에서 깨어나 달라지셨던 거예요. 저나 로간씨, 엘시와 있을 때에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톨비쉬님과 있을 때에는 그 누구와도 달랐을 수밖에 없었을 조장님을 저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던 거겠죠. 위대한 분들끼리 통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냥…… 어쩌면 저처럼 누군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게 되었던 감정이었을지도 몰랐던 거예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 저는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훔쳤어요. 눈물은 거의 말라있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어요. 우는 소리가 다른 방에나 들리지 않았으면 다행일 텐데.
……괜찮지는 않아요. 하지만 괜찮은 척은 해야 해요. 내일 또 조장님을 만날지도 모르고, 어디로 임무를 갈지도 모르는데 주저앉아있을 수는 없잖아요. 얼굴을 씻고 비척비척 누워서 이불을 덮었으니까 또 떠올라버리긴 했어요. 울 것 같은 얼굴의 조장님과, 복잡한 표정의 톨비쉬님이.
자야하는데, 자야…… 하는데. 눈을 질끈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머릿속의 영상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또다시 벌떡 일어나고 말았어요. 놀란 소리를 내려다가 목에 뭐가 걸려서 켁켁대고 말았지만요.
결국 저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말았죠. 다른 건 다 잊더라도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는 점이 있었거든요. 만약 제가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까…… 조장님 같은 분과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저는…… 그런 표정이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울었을지도는 모르죠, 너무 기뻐서요. 마, 만약 정말 만약에 조장님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면 그랬겠지만.
하지만 울 것 같았던 조장님의 얼굴은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서 저는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어요. 로간씨가 너무 늦게까지 훈련해서 피곤한 게 아니냐며 걱정해주셨어요. 그야 늦게까지 훈련했던 건 맞지만…… 차라리 오늘도 늦게까지 훈련해서 몸을 더 피곤하게 만들면 푹 잘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 같은 건 다 잊고요.
오늘만, 적어도 오늘만 조장님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건 물론 처음이었어요. 이왕이면 톨비쉬님도 계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연히 제 바람과는 상관없이, 저는 아직 아발론 게이트에서 돌아가시지 않았던 톨비쉬님이 슈안님과 대화하시고 문을 통과하시는 걸 봤어요.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느낌의 톨비쉬님은, 마치 제가 본 게 꿈이었던 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죠. 또 호기심 비슷한 것을 억누르지 못한 저는,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엘시에게 물어보고 말았어요.
"엘시, 조장님은 혹시 돌아가셨어?"
"……아니요."
제가 오기 조금 전까지 훈련장 근처를 걸어가시는 걸 보았다고 엘시는 그렇게 대답해줬어요. 그럼 조장님은 아직 이 근처에 계신 걸까요, 고민해보니 조장님은 돌아가기 전엔 꼭 임무나 수련을 지시하셨으니까 아발론 게이트 내부 어딘가에 계신가 봐요.
조장님이 제게 말을 걸러 오신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어요. 저는 또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멋대로 생각하고 말았죠. 어쩐지 모습이 보이시지 않았던 건, 톨비쉬님과 마주치는 걸 피하셨던 게 아닐까하고. 조장님의 얼굴을 본 저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밤에 제가 했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고요.
어떻게 보아도, 아주 큰 고민을 끌어안고 있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의 표정이었는걸요.
……조장님을 좋아하니까 알 수 있어요.
그 뒤 며칠 간 임무를 다녀오면서 저는 조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제가 보고 생각하고 판단한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머리 한쪽에 쌓이고, 조금 울고 싶어졌다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죠. 그리고 제 머릿속은 풀리지 않은 의문을 향해 나아가버렸어요.
제가 추론한 모든 것들이 맞는다고 가정하면, 그러니까, 저기…… 제가 본 건 톨비쉬님이 조장님께 다가가는 거였으니까요. 거기에 조장님도 그걸 싫어하시지 않았다면, 받아들이고 싶어하시는 것처럼 제게 보였다면, 인정하기는 싫지만 역시 조장님도 톨비쉬님을, 그런 거겠죠……?
시간이 오래 지나면 이런 일들도 언니에게 털어놓고 내가 바보 같았다면서 웃을 수 있을까요?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었는데,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좋았는데, 그분은 이미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어차신 것 같아서 포기해야만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요.
조장님이 정말로 다른 분을 연모하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운이 좋았던 건지 아튼 시미니님의 뜻인지 몰라도, 저는 정말로 조장님의 곁에 오게 된 것만으로도 행운아니까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더는 바라지 않는 게 제가 가져야할, 가질 수밖에 없는 올바른 태도겠죠.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 정도는 신께서 지켜보고 계셔도 용서해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상식과는 아주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서 생기는 의문이니까요.
톨비쉬님이 조장님께 마음을 보이고, 조장님도 톨비쉬님께 마음이 있으시다면 어째서 조장님은 그렇게 고민하고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셨을까요. 그건 연애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저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어요. 마음을 포기한 것도 포기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받아들이거나 다가가지 못한 채 정체되어 고민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괴로울 수박에 없을 거예요. 탈력할 때까지 펑펑 울기까지 했던 제가 결론을 내리고 지금처럼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기 전에는, 저도 그런 상태였거든요.
어쩌면 제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면 조장님은 예전처럼 돌아가 계실지도 몰라요. 저만 살짝 눈치 챘던 작은 사건이 어디선가 사라진 것처럼, 조장님은 양지바른 곳에서 묵묵히 책의 페이지를 넘기시고 로간씨가 점심을 만들어오고, 엘시가 자기 몸만한 무기를 들고 다가와 조장님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조장님께 무언가를 물어보러 가려는 제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하면, 조금 피로한 얼굴의 톨비쉬님이 오셔서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오늘도 다행이라고 말씀해주실지도 모른다고.
아발론 게이트로 귀환한 저는, 제 바람이 단도직입적으로 희망사항에서 끝나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제가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려고 했을 때, 훈련장의 얼어붙은 분위기가 맞이해줬고 저는 갈 곳을 잃었어요.
그, 하필이면 제가 평소 훈련하는 자리 근처에서…… 보고 싶었던 조장님과 톨비쉬님이 무언의 대화를 벌이고 계셨거든요.
"슈안님."
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고 애쓰면서 슈안님께 인사했어요. 슈안님도 두꺼운 안경 너머로 꽤나 곤란한 눈치셨죠.
"이야, 카나양. 임무 고생했어."
"무슨 일 있었나요? 분위기가 좀……."
"나도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딱 봐도 뭔가 있었던 분위기지만, 말도 없이 저러고 있으니 알 수는 없지."
"하하, 그, 그러게요."
무슨 일이 있기는 했죠. 저는 그 말을 꾹 삼키며, 어쩔 수 없이 조장님께 다가갔어요. 톨비쉬님의 시선을 회피하는 듯이 애매한 곳을 보고 계시던 조장님이 저와 눈을 맞추셨어요.
"……어서 오세요, 카나씨."
"다녀왔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조장님과 톨비쉬님은 지금 같이 있으려고 하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았어요. 회피하는 기색의 조장님, 그리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말을 걸 듯 말듯 계시는 톨비쉬님. 제가 임무 결과에 대해 일부러 떠들썩하게 입을 열려고 하자 톨비쉬님은 그럼, 하고 짧은 인사를 남기고 가버리셨답니다. 덕분에 조장님의 긴장은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었지만, 마치 톨비쉬님이 떠나가신 자리조차 보시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조장님, 다음엔 뭘 하면 좋을까요?"
짐짓 발랄하게 여쭤보자 조장님은 평소보다 뜸을 들이셨어요. 힘들었을 테니까 쉬어달라고, 그 한 마디는 어쩐지 제게 너무도 무거웠어요. 제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보았던 조장님과, 지금 뵌 조장님 양쪽 다 전혀 쉬신 적이 없는 듯이 피곤해보였거든요.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지치지 않던 분이 말이에요.
역시 저번의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나봐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조장님은 톨비쉬님을 제가 보았던 사건 이후로 멀리하고 계시는 거고, 톨비쉬님은 더 다가오지 못하신 채 적당한 거리만 유지하시는 거겠죠. 제가 아까 보았던 두 분의 물리적 거리는 딱 그런 느낌이었으니까요. 톨비쉬님 스스로 기다리겠다고 하셨던 말대로요.
하지만 제 옆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제가 떠드는 잡담을 듣고 계신 조장님은 그 기다림에 전혀 답하지 않으셨나 봐요. 이것도 잘은 모르지만, 만약 무언가를 이유로 조장님이 톨비쉬님의 마음을 거절 하셨다면 그런 식으로 계속 기다리시진 않을 것 같거든요. 차라리 설득하려고 하시지 않을까요? 기사답게 정면으로 말이에요.
저는 이제 조장님을 조금은 알아요. 저희 조장님은 강하고, 멋있고, 상냥한 분이에요. 부탁을 거절하시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유부단하거나 유약하지는 않아요. 제가 임무를 다녀오는 사이에도 결론을 내시지 못했다면 정말 큰 고민을 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조금씩 멀어지는 조장님의 얼굴을 곁눈질했어요. 조장님은 사실 알반 기사단의 그 누구보다 강하실 거예요. 하지만 그런 강함과는 상관없이, 조장님의 얼굴에서 늘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견습 기사로서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고 이 아발론 게이트에서 가장 약할 저만이.
제가 기사가 되지 못한다면, 누군가 실망은 하더라도 납득은 해줄 거예요. 노력이 닿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다고 누군가 위로해줄지도 몰라요. 그렇다더라도 제가 좌절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침대에서 엉망진창이 되도록 펑펑 울면서 언니에게 잔뜩 혼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기사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도 피해를 입지는 않아요. 저에게 누군가가 그런 희망이나 미래를 건 적은 없으니까요. 저는 위대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덜렁이인 걸요.
그렇다면, 에린을 몇 번이고 구원한 사람에게는 대체 어떤 기대가 걸려있을까요? 제가 그걸 문득 깨달았던 날은, 알터 선배님이 제바흐를 용맹하게 상대하던 조장님의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었던 때였어요. 제바흐라니, 보통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죽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사도잖아요. 조장급 기사님들도 두세 명은 있어야 상대가 가능할 사도를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의 힘을 막연하지 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죠.
제게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어요. 조약하지만, 느낌만 따지면 마치 손짓 한 번에 땅이 진동하고 적이 우수수 쓰러질 정도로 조장님이 강하시니까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이신 거겠죠. 그래서 에린을 구하실 수 있었고. 선지자들을 물리치시고, 이렇게 알반 기사단의 요청을 받아 제 조장님이 되어주셨고, 저는 조장님께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영웅이 저를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실 거라고.
기대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주어진 것보다 넘쳐버린다고 느끼면 큰 부담이 되어요. 얼마 전의 제가 그랬죠. 제게 있는 미지의 힘을 어떻게든 끌어내보려다가, 조장님께 큰 폐를 끼쳤어요. 온전히 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힘을 무리하게 손에 넣으려고 했던 것은 다른 분들이 제게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도 있었을 거예요. 제가 언젠가는 제대로 이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그렇게 느낀 저는 작은 무리를 했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저는 제가 다루지도 못하는 어떤 힘에 대해 받는 기대만으로도 그렇게 벅찼는데, 조장님은 그 이름이 에린에 알려지신 순간부터 대체 어떤 기대를 받아오신 걸까요. 외견만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이름들이 붙어계신 조장님의 몸이 때로 너무도 작아보였던 건, 거기에 걸린 기대에게 눌려버린 조장님의 모습이었을까요.
좋아하는 마음도 그리고 그 마음에 응답해주기를 바란다는 것 또한 기대겠죠. 저는 조장님께 이제 제 마음이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아요. 톨비쉬님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장님은 제 마음을 받아주시기엔 이미 탑을 쌓아올린 듯이 높은 기대 위에 서계실 거예요. 위태로워도 그 위에서 어떻게든 그 모든 바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그림자 세계든 사도의 곁이든 다녀오고 계신 조장님.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제가 조장님과 대화하고 조장님을 알아갈수록 조장님을 더 좋아하게 되었듯이요. 또 울면 얼굴이 망가져서 들킬지도 모르니까 역시 이런 생각은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해야겠어요. 이렇게, 거절당하거나 포기하는 것도 당연히 있는 일이고 말이에요.
누구든지, 저라도 고백한 마음을 거절당하는 건 두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보다, 마음을 받아들이는 건 기쁘면서도 더욱 무서운 일이에요. 거절은 끝이지만 받아들이는 건 하나의 기대가 끝나고 새로운 기대가 시작되어버릴 테니까요.
조장님은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셨을 거라고 저는 이제 서글프지만 조금 식은 머리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저에게 누군가를 안타깝다고 볼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요?
때론…… 아무런 기대도 받지 못하는 저보다, 조장님이.
……다쳐도 나아버리고 병들지도 죽지도 않은 채 에린을 구원해주신 분의 삶이, 너무도 힘겹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또다시 그 두 분을 보게 된 건 이번엔 필연이었을까요. 아마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톨비쉬님이 답을 듣기 위해 아발론 게이트 주변에 자주 오셨던 것도 있을 거고요.
마지막 임무를 다녀오고 나서도 며칠 이상이 지나서, 그러니까 조장님이 톨비쉬님을 피해다니시는 걸 저 말고도 다들 대충 알고 나서, 손가락만으로 세기 힘든 날짜가 되었던 때였어요.
아발론 게이트의 밤은 정말로 적막해요. 발에 돌이 채이는 소리가 하나하나 다 들릴 정도로요.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바깥으로 살짝 나온 저는 인기척을 느끼고, 반드시 그래야할 것처럼 따라갔어요. 예감이 들었던가 봐요, 제 의문이 풀릴 거라고요.
이번엔 의도적으로 엿본 거나 다름없다는 걸 저는 모든 상황이 끝날 때쯤에 알았어요. 아마 원래부터 알았더라도 딱히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요.
"계속 이렇게 행동하시는 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클로드씨."
"……."
조장님은 말 수가 적어보일 때는 있어도, 누군가가 단도직입적으로 건넨 말에 이토록 침묵으로 일관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톨비쉬님을 올려다보는 조장님의 얼굴에는 피하고 싶었던 감정들이 모두 깃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멀리서 봐도 복잡하고 슬프고 우울하고도 격정적이고 터져버릴 듯한 기분이라고, 저는 입을 꾹 다물고 지켜봤어요.
"연이어 나타나는 저를 끈질기다 하실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건 클로드씨에게 책임을 전가해도 될 것 같군요. 그 어떤 일이 지금 일어나더라도, 제게는 답을 듣는 일 또한 중요했습니다."
"저는……."
조장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어요. 어조가 떨리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거든요. 톨비쉬님 앞에서는 정말 어린 아이인 듯이 작아보이는 조장님이, 힘겹게 무언가를 말하셨어요. 톨비쉬님은 물러나지 않으셨고요.
"클로드씨가 도망치시는 분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죠. 그래도…… 애가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살아가는 건 참 힘든 일이더군요. 신께서 내리신 시련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죄송해요."
조장님의 진심 어린 사과는 제 귀에도 들렸지만, 톨비쉬님께 필요한 건 사과가 아니었겠죠. 원하는 건 진실한 마음, 설령 그게 기대를 저버리는 방향으로 다가올지라도.
조장님은 조금씩 입을 열고 계셨어요. 침묵했던 시간만큼 쌓인 말들일 거라고, 저는 남몰래 들을 수 있었어요.
"저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어요."
"제가 필요로 하는 말은 하나뿐입니다, 클로드씨."
유난히 단호한 말에 제가 다 움츠러들 것 같았어요. 톨비쉬님은 흔들림 없이 조장님을 응시했고 조장님은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어요. 똑바로 보고, 아주 조금씩 다시.
그 목소리의 떨림에 탄식과 오열이 섞여있지 않았더라면, 저는 결코 지금의 조장님이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신지 알지 못했을 거예요.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선 안 됐어요."
결정은 내렸지만 괴로워하는 울음소리, 저는 숨을 삼키고 미동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숨어서.
"그건 무슨 뜻인가요, 제가 말씀드린 모든 것들을 거부하신다면 그걸으로도 답은 됩니다."
"아니에요, 저는.“
말은 끊이지는 않았지만 간격이 나뉘어 있었어요. 제가 멋대로 추측했던 조장님을 저는 거기서 엿보았어요. 기대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움에 떠는 분, 받아들인 후의 일을 걱정하는 사려 깊은 분.
조장님이 톨비쉬님께 무어라 속삭이셨는지는 눈물이 흐르는 소리의 흔적에 섞여 들리지 않았어요. 그저, 톨비쉬님의 반응을 보고 알 수 있었죠.
딱딱했던 얼굴이 조금 풀린 듯한 톨비쉬님은 눈을 감고 가만히 팔을 뻗어 조장님을 끌어안아주셨어요. 톨비쉬님의 어깨 너머로 조장님의 얼굴이 얼핏 보였죠. 눈물 자국을 감추려는 듯이 감은 눈 아래로 조장님은 제가 돌아온 이래 본 그 어느 날보다 편안해보였어요.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것처럼 톨비쉬님이 조장님의 등을 쓰다듬어주시고 조장님은 가만히 몸을 맡기셨어요.
당신의 울음은 이제 멈출까요, 그 몸에 기대를 하나 더 쌓아올린 조장님은 두려워하시지 않아도 될까요.
톨비쉬님은 어떤 심정으로 클로드 조장님께 다가서실 수 있었던 걸까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는 것조차 많은 제약이 뒤따를 위치에 있는 알반 기사단에서도 꽤 중요한 자리를 맡은 분이니까요. 아마 조장님이 받아들여주시는 것과 별개로 많은 고려가 필요하셨을 거예요. 그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과 긴밀한 관계가 된다는 게 얼마나 복잡한 사정이 될지, 저는 역시 상상도 할 수가 없어요. 톨비쉬님에게도, 조장님에게도…… 모두들, 각자 바라는 것이 많을 테니까요. 능력 있는 자에게, 또는 영웅에게.
하지만 톨비쉬님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아슬아슬한 탑 위에 올라서신 듯한 조장님에게 손을 내밀어 끌어당길 만큼 조장님을 좋아하시는 거겠죠. 그리고 조장님도, 안타깝고 위태로운 상황에 무너질 것처럼 망설여도 톨비쉬님의 손을 잡고 싶으셨을 만큼, 이미 마음에 담아버리신 거라고.
아마 톨비쉬님과 조장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보지 못했더라도, 저는 결코 제 마음을 조장님께 드릴 수 없었을 거예요. 조장님은 이미 너무 많은 기대를 지니고 계신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니까요. 그저 이 마음을 다른 기대의 아래에 감추고 바람을 죽인 채 바라보았겠지요.
저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이대로 괜찮을 거예요. 실연을 당했다고 마음이 금방 사라질 수는 없잖아요? 아마, 조금 아프고 시리더라도 당분간은 조장님만 보면 오래오래 가슴이 뛰겠죠. 일부러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두근거림도 안타까움도 쓰라림도 모두 제가 가졌던 기대의 결과였고, 제가 조장님께 보이지 않고 들키지 않게, 그 몸에 짐을 얹어드리지 않고 기댈 수 있는 정도의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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