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윈이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는 일은 그다지 드물지 않았다. 피네는 무릎을 대고 바닥에 조심스럽게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볕에 탄 듯이 까만 얼굴이 단정하게 눈꺼풀을 내린 채 미동도 없었다.
그거 알아? 나는 네가 자고 있는 모습을 참 좋아해. 그녀는 들리지 않을 말을 입 안에서 혼자 속삭이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작은 호기심이었다. 손톱이 살며시 피부를 꾹 눌렀다. 숨소리는 고르고 말은 없었다.
"좀 잘게."
그렇게 말하고 카즈윈이 눈을 감아버린 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지친 상태더라도, 피네에게도 조금은 생소한 일이었다. 카즈윈을 찾아다닐 때엔 늘, 어딘가에 자는 듯이 드러누운 그를 발견하는 순간 어느새 눈을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고 있었던 것 같다가도 금방, 밤의 부엉이처럼 빈틈없는 시선을 향해오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라고 해도 피곤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무구를 내려놓고 팔을 베개 삼아 가볍게 누운 뒤 바로 잠들어버린 카즈윈을 보면서, 피네는 그가 금방 눈을 뜨고 이쪽을 마주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에잇."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에 댄 손가락을 슬쩍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피네에게 자는 사람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었다. 타인의 앞에서 이토록 깊게 잠든 카즈윈을 보는 게 신기했을 뿐이었다.
"불편할 텐데……."
베개고 담요고 없이 옆으로 돌아누운 카즈윈을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어서, 피네는 그를 보며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의 위치를 옮겼다. 살짝 마른 입술 위에서 멈춘 손가락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처럼 어쩐지 가만히 있어야할 것 같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지만 카즈윈은 정말로 귀찮다면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을 법했다. 진짜 자는 거라고 생각하며 피네는 웃었다.
"나도 참."
그냥 자는 사람을 지켜보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쿡쿡 웃다가 손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근육이 붙은 목으로 내려가서는 갑옷을 입지 않은 가슴까지. 옷 하나가 가린 가슴팍 위는 굳이 눌러보지 않아도 알 만큼 단단했다. 검 두 자루와 석궁을 자유자재로 다룰 만큼 잘 단련된 몸이었다. 같은 기사여도 꽤 차이가 난다. 피네도 단련한 몸이기는 했지만, 마법사이니 기본적으로 다른 동료들보다 육체적인 면은 조금 떨어지는 구석이 있었다.
이런 몸이니까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서있을 수 있는 걸까. 피네는 카즈윈이 그 어떤 전투에서도 패배하지 않을 것 같은 환상을 떠올려보았다. 그가 베지 못하고 쏘지 못하는 적은 없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아마도 카즈윈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일 거라고 피네는 생각했다.
너를 보면 잊을 수 있었어.
신 앞에서 언제나 죄인이 되어야 했던 어린 아이는 지금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다보면 문득 옆에 그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그저 그곳에 있는 사람의 존재감이 어찌나 크게 느껴지는지 알았던 그 순간부터 피네는 저도 모르게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았다.
잊으면 안되는 것이었는데도 네 옆에 있으면 다 잊을 것 같다고 깨달았던 날, 피네는 진심으로 웃으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네 시선이 나는 가장 따뜻했어. 그 땐 왠지 모르게 그렇게 느꼈지만 지금은 이유도 알아.
그건 네가 나를 붙잡아준 이유와 같을까?
피네는 숨을 삼켰다. 그의 몸을 어루만지던 손을 뒤로 빼지도 못한 채 살짝 굳어버렸다.
수리부엉이처럼 곧은 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하, 카즈윈. 일어났어?"
"……."
손목을 잡은 채 그대로 끌어당겨져 피네가 앗, 하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누웠다. 조금 전까지는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이제는 누운 채 마주보게 되어 피네는 연녹색 눈동자만 깜빡거렸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카즈윈이 말했다.
"아직 졸린걸."
"다시 자도 돼."
"네가 장난을 쳤잖아."
"이젠 안 할게, 그러니까 더 자."
밝게 웃으면서 피네가 그렇게 말하자 카즈윈은 서서히 눈을 감더니, 다시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자는 얼굴을 계속 지켜보다간 자신도 잠들 거 같아서 일어나려던 피네는 두 팔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카, 카즈윈?"
"……."
불러도 대답이 없다. 조금 전에 깨워서 미안했던 터이니 더 이상 카즈윈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손목이 잡힌 채 조심스럽게 팔을 내려놓자 아까 전까지 장난치는 것처럼 쓰다듬었던 몸에 자연스럽게 안긴 것처럼 피네는 그를 보며 누운 채였다. 그녀는 뻔한 질문을 던졌다.
"카즈윈, 자?"
"……그래."
안 자는구나,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고 피네가 말했다.
"이거 불편해, 카즈윈."
"……."
"카-즈-윈."
"……."
이젠 아예 불러도 말이 없다. 자는 척 하는 것인지 정말 잠든 것인지, 피네는 또 웃고 말았다. 애초에 호기심으로 그를 건드려보지 않았으면 이럴 일은 없었겠지만, 별로 후회되지는 않았다.
누군가 부르러 오거나 하면 조금 곤란한 모습이겠지만, 잠깐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피네는 시선을 다시 그에게 향했다.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사람의 얼굴은, 어찌나 따뜻한지.
피네는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어둡게 닫힌 시야 안에서 두 개의 호흡이 흔들렸다. 악몽도 환청도 없이 오직 그것만이, 몸을 채우고 다스려서 그녀는 안도의 숨을 뱉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편안하듯이,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나 같은 인간이라도.
"……."
그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여전히 자는 것처럼 눈을 감았을 그의 팔이 피네의 등을 감쌌다. 아주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고동은 조금 멀고 숨소리는 정확하게 느껴지는 거리에서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가 있어주어서 불안하지 않은 어둠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듯한 기분으로 피네는 서서히 잠에 빠졌다. 그 순간 카즈윈이 정말로 자고 있었는지는, 그 후로도 알 도리가 없었다.
기회가 있다면 또, 잠들어 눈을 감은 네 얼굴을 바라보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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