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조님께서 신청해주신 커미션입니다.
이전 커미션들과 부분부분 이어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우리 특별조 조장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제 조장님이 상냥하고 다정하시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조금 중요한 사건이 있었어요. 물론, 그런 일이 없었어도 조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저를 포함해서 다른 견습 기사들이 조심해야겠다고 몰래 얘기하게 되었을 정도로 마음이 약하실 줄은 아무도 몰랐거든요.
그런 분이라 오히려 강하게 다가가지 않으면 조장님의 곁에 있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그렇게도 생각해요. 저는 그럴 수 없으니까 조장님의 조금 먼 곁이라도 좋지만요.
다시 생각해도 역시, 처음 만났던 조장님은 모두가 무의식중에 생각하던 에린의 영웅과는 이미지가 정말 달랐죠. 저는 그렇다 치고, 로간씨와 얘기하실 때엔 멀리서 보면 조장님과 조원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거든요.
저에게 처음 오셨던 때에도 저와 화제를 맞춰주실 때마다 굉장히 조심하고 계신 게 느껴졌어요. 괜찮은 대화거리인지, 말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배려하시는 조장님을 보면서 이 분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절대로 앞으로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확신했죠.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늘 놀러다닐 것처럼 보였던 디이도 조장님이 시키는 일은 그래도 꽤 진지하게 하기 시작한 걸 보면 알 수 있었어요. 조장님의 성의와 진심이 저희들을 열성을 다해 움직이게 하셨다는 걸요.
저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반호르 근방까지 다녀오는 조사 임무였는데, 처음으로 나가는 꽤 긴 임무였답니다. 임무지에서 해야할 일을 읽어보는 제 옆에서 조장님은 별 말 없이 잠깐 떠나지 않고 계셔서, 무언가 더 시키실 일이 있나 싶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로간씨나 디이에게도 비슷했다고 하더라고요. 타라나 탈틴, 아니면 어딘가의 던전까지 들어가야하는 긴 임무를 전달해주시고 난 다음에는 꼭 곁에 계셨나봐요. 그건 조장님 나름대로의 배웅이었을 거예요.
아마 저도 아니까 다들 눈치챘을 거 같아요. 조장님은 누군가와 매일 대화하고, 무언가를 지시하시는 것에 전혀 익숙해보이지 않으셨다는 걸요. 훈련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말씀하신 다음에 가끔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지만, 임무는 정말 고민하시는 것 같았어요. 길고 위험도가 올라가는 임무라면 한참이나 아발론 게이트를 벗어나게 되어서 그런지, 망설이면서 지령서를 주시는 것 같았거든요.
왜 그렇게 보이셨는지 저희들이 정확하게 알았던 건 던전으로 잠입해야하는 임무를 다녀온 로간씨가 아발론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셨던 때였어요. 슈안님이 달려가셨고 저도 훈련을 멈추고 달려갔죠. 로간씨는 정말 간단한 응급 처치만 하고 돌아온 건지 상처가 터져서 옷이 피에 젖어들어가고 있었죠. 물어보니 이정도는 돌아와서 치료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로간씨의 응급처치 실력이야 뛰어났을 거고 저희들은 어지간해서는 바깥에 행동을 노출시키면 안 되니까 틀린 판단은 아니었지만, 아발론 게이트에 온 이래 가장 크게 다친 사람이 생겼으니 모두가 술렁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디이가 슈안님과 함께 로간씨를 치료소까지 부축했어요. 그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카오르가 슈안님께 도울 일은 없냐고 물었고, 저는 로간씨가 많이 다쳤냐고 묻는 엘시에게 그런 것 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어요. 슈안님은 카오르에게 치료에 필요한 건 일단 다 꺼내달라고 부탁하셨고, 반대편에서 상황을 알고 온 아이르리스씨도 안색이 변해서는 힐링 완드를 찾으러 갔죠.
조장님은 아마 로간씨가 돌아오실 때에 맞춰서 도착하셨던 걸 거예요. 아발론 게이트의 입구에 아무도 없자 소란스러운 쪽으로 오신 조장님의 얼굴이 그렇게 바뀐 건 모두 처음 보았죠. 병상에 누운 로간씨가 애써 웃으면서 조장님께 인사했지만, 조장님은 치료소의 앞에서 굳어버리신 것 같았어요. 솔직히 로간씨의 부상이 심하긴 했거든요. 출혈에 골절…… 그리고 독거미에게 당한 독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아요.
"로간씨……."
"아, 조장님. 면목 없습니다. 조사 결과도 변변치 않고, 믿고 보내주신 임무인데 실패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 니다."
로간씨가 말을 멈출 뻔한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어요. 카오르군과 수납함에서 붕대며 해독제를 가져온 슈안님이 당황하셨을 정도였으니까요. 디이가 카오르를 잡고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야, 조장도 어디 아픈 거 아냐?"
"내가 알겠냐."
"조, 조장님. 조장님?"
로간씨가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킬 정도로 놀랄 만도 했죠.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저도 소리를 듣고 확신했으니까요. 저 편에서 돌아온 아이르리스씨가 치료소에 가까이 못하고 멈췄어요. 조장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로간씨가 어떻게든 말을 붙이려고 노력했죠.
"조장님, 진정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치료도 금방 할 거니까요."
"흑, 죄송해요…… 죄송해요, 흐윽."
주체하지 못하고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조장님께 대체 무어라고 말해야하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소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울고 계신 조장님만 보면 로간씨가 지금 당장 죽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죠. 부상만으로도 아플 로간씨가 쩔쩔매며 조장님께 진정해달라고 몇 번 더 말하자 울음을 약간 삼킨 조장님이 슈안님에게서 약과 붕대를 받아드셨어요. 저는 조장님을 보며 조마조마하게 아무 말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어요. 설마 이렇게 우실 줄은…… 전혀, 저언혀 몰랐다고요.
누울 수 있게 된 로간씨는 조장님께 치료를 받았고, 긴장하지 않아도될 정도로는 마무리가 되자 조장님은 로간씨에게 더 말도 붙이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셨어요. 아무도 조장님을 잡지 못했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아이르리스씨가 로간씨에게 힐링을 걸고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답니다. 나머지는 슈안님이 로간씨를 돌보겠다고 하셔서, 저도 훈련 장소로 돌아왔지만 조장님이 무척 신경쓰였어요. 엘시가 조장님이 가버리신 장소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걸 보면 모두가 그랬던 거예요.
그리고 로간씨가 복귀하실 수 있게 된 뒤에 일은 벌어졌어요. 평소에 슈안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로간씨와 제가 한달음에 달려가서 조장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그 일이요.
"이거 참, 곤란한데요. 클로드님께서 이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장님, 저는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장님, 안 돼요!"
로간씨와 제가 그렇게 외치며 끼어들자, 클로드 조장님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답하셨어요.
"이건 제 문제예요."
조장이란 직위에서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이 싫으셨던 건 아닐 거라고 저는 믿고 싶었어요. 조장님은 다행히도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더 슬픈 말을 하셨죠.
"제 지시로 누군가가 다치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죄송해요."
로간씨가 그건 조장님의 지시로 다친 게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하셨어요. 새로운 소란에 고개를 내밀었던 디이도 무슨 일인지 알자 얼굴이 바뀌어서는 끼어들었죠.
"가지 마 조장, 우리 일은 원래 이렇…… 아니, 조장이 없으면 난 이제 뭘 해야할지 모를 거 같단 말이야. 이 아발론 게이트에 와서 계속 조장과 같이 있었는데 조장이 없어지는 건 싫어."
원래 다치고 가끔씩 눕는 게 일이라고 말할 뻔했던 디이를 쿡 찔러서 슈안님이 말려주셔서 다행이었어요. 저는 말재주가 없지만, 조장님께 하고 싶은 말은 있었어요.
"조장님이 조원들을 언제나 걱정해주시는 거 느꼈어요. 그래서 더 힘내서 훈련하고, 임무도 다녀올 수 있었어요. 저는…… 조장님이 필요해요. 가지 말아주세요!"
로간씨도 조근조근 조장님께 말했어요.
"저번의 제 부상 때문이라면 심려를 끼쳐드려 저야말로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조장님이 본인 마음의 문제라고 하셔도, 저도 카나양도 디이군도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저희들이 더 노력할 테니 지켜봐주셨으면 하고 바랄 수는 없는 걸까요, 조장님."
저희들에다가 슈안님까지 네 명이나 붙어서 차례대로 말하자 멈칫하신 조장님은 잠시 말이 없으시다가,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해주셨어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안심이 되어서, 저는 울 것 같은 얼굴을 감추고 돌아갔어요. 검을 휘두르다가 들키면 안 되니 그 날 수련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했지만요.
며칠이 지났을 때 로간씨가 잠깐만 와달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슈안님이 자리를 비운 곳을 지나 로간씨 곁으로 가자 디이도 쪼르르 왔죠. 무슨 일인가 했더니, 슈안님이 아까 말해주셨다고 했어요.
클로드 조장님이 계속 저희들을 맡아주시기로 했다고요. 기뻐서 펄쩍뛰고 싶었지만, 아직 문제가 남아있었어요.
"우리 조장, 그 정도로 착할 줄은 몰랐어. 임무는 고사하고 훈련하다가도 다치는 게 견습 기사인데 말이야."
디이가 고개를 저으며 안 되겠다는 듯이 말했고 로간씨가 끄덕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두 사람에게 먼저 전달해둘게요."
아무래도 조장을 관두는 일에 대해 알반 기사단의 다른 사람과 상담하신 클로드 조장님은 관두겠다는 마음은 버리신 것 같았어요. 어떻게 설득되신 건가 했더니, 저희들이 조장님을 정말 필요로 한다는 부분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사실이기도 하고요.
조장님은 그래서 아마 앞으로 임무를 부탁하실 때 조금만 어려운 일이 끼어있어도 이전보다 더 조심하실 것 같았어요. 조장님의 임무 지시로 저희가 다치는 걸 보고 싶어하시지 않는다는 걸 모두 알아버렸으니,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둘뿐이었어요. 다치지 않거나……
"이렇게 하는 걸로, 괜찮나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곧 말해둘게요."
만약 저번의 로간씨처럼 심각한 수준의 부상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으니, 일단 조장님께 알리기는 하되 조장님이 최대한 덜 걱정하시도록 먼저 치료해버리기로요. 저는 디이와 함께 대답했어요.
"그러자고."
"그럴게요."
그 뒤로 가끔씩 누군가가 장기 임무에서 다쳐오면 슈안님이 한숨을 쉬며 조장님께 연락을 조금씩 늦게 넣고, 저희들은 부상의 가짓수나 정도를 먼저 줄이기 시작했어요. 상냥하고 다정하고 마음 약한 저희들의 조장님께 상처를 드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런 분인 걸 알게 된 이후로 조장님이 더 좋아졌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 분이라서 이렇게 곁에 있으면 따뜻하고 웃음만 나오고 얼굴만 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겠죠.
이번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면 조장님이 다정하게 맞이해주실까요? 그러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절대 다치지도 않을 거고, 꼭 성공해서 돌아가고 싶어요. 저는 이제 조장님께 제 마음을 영원히 고백하지 않을거지만, 제 곁이 아니어도 조장님은 울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조장님이 우는 걸 처음 보았던 것은 그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톨비쉬님의 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시던 때. 저는 어느 쪽도 잊을 수 없어요. 언젠가는 덜렁대는 제가 또 조장님을 울게 만들지도 몰라요. 어쩌면 톨비쉬님과 조장님 사이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일이 조장님을 울릴지도 모르죠. 하지만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저는 이렇게, 그 상냥한 마음을 돌려드리기 위해 최고로 노력할 거예요.
부디 한번이라도 더 행복하게 웃어주세요, 우리의 다정한 조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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